더글로리 신드롬이 소환한 학폭 미투
송혜교의 치밀하고 통쾌한 복수극이 펼쳐지는 드라마 '더글로리' 시즌2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지 사흘 만에 세계 정상에 올랐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 홍콩, 태국,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등 38개 나라에서 시청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더글로리 시즌1이 입소문을 타며 뜨거운 화제가 되었고, 시즌2에 대한 기대감에 불이 붙으면서 공개 전날 넷플릭스 사용자 수가 61%나 늘었다고 한다.
더글로리는 유명 연예인들의 과거 학교폭력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심지어 더글로리를 제작한 PD마저 '미투'를 비켜가지 못했다. 과거의 학폭 가해사실이 폭로되면서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고데기 화상 폭력이 작가의 상상이 아닌, 실제 2006년 청주에서 있었던 사건이라고 하니 끔찍할 뿐이다.
서울대학교 대학신문은 "멋지다 순신아"라는 문구를 넣은 만평을 실었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지명됐던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교폭력 2차 가해성 소송을 풍자한 것이다. 정당들도 앞다퉈 더글로리의 대사를 패러디한 메시지를 현수막에 담아 거리에 내걸었다. 국내 한 코미디 프로그램은 '더칼로리'라는 패러디 코너를 내보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또한 박연진이 손명오의 머리에 내리칠 때 사용한 양주병이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5만 원에 나오는 등 숱한 화제를 뿌리고 있다.
이쯤 되면 더글로리는 이제 하나의 신드롬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이 지구촌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가?
더글로리는 고등학교 시절 끔찍한 폭력에 시달렸던 한 여성이 어른이 되어 가해자들에게 철저히 복수하는 것을 그린 드라마다. 치밀한 계획을 세워 가해자들에게 접근한 뒤 가해자들끼리 물고 뜯게 만들며 파멸로 이끄는 스토리다. 드라마는 전개 과정에서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하고 또 통쾌하게 만든다. 언뜻 보면 막장드라마인 듯 하지만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모니터 안으로 불러내 선이 악을, 정의가 불의를 응징하는 해피엔딩 드라마다.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 박연진의 이 대사가 보는 이들, 특히 못 가진 이들, 사회적 약자들을 치 떨리게 했다. 그리고 문동은의 야심차고 냉혈한 복수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사회적 강자는 가해자여도 응징받지 않은 채 늘 강자로 군림하는 설정, 작금의 현실 세계와 그리 다르지 않음에 많은 이들이 격노했다. 그러면서 무엇이 '공정'이고 무엇이 '정의'인지를 묻게 만들었다. 사회적 약자는 피해자여도 늘 사회적 약자로 살 수밖에 없는 설정, 실제 그와 같은 모순된 현실에 대한 분노와 비판이 더글로리 신드롬에 투영되었다.
역설적으로 박연진의 바람과는 달리 학폭 가해자들에게는 권선징악, 인과응보가 통했다. 드라마의 결말은 보는 이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다. 하나 더 보태면 사필귀정이다.
전 세계를 휩쓴 더글로리 열풍을 이대로 가라앉게 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의 동은이가 생기지 않도록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뿌리 뽑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보고 모방하게 될 독약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는 댓글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교육 당국은 실효성 있는 방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나아가 뉘우치지 않는 가해 강자가 늘 강자로 군림하지 않고 억울하게 피해당한 약자들이 늘 사회적 약자에 머무르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