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가 사라진다.
어린 시절 고기를 먹는다는 건 꽤나 사치였다. 그나마 돼지고기는 가끔 먹었지만 소고기는 명절 때를 빼놓고는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어쩌다 한 번 어머니께서 해주신 불고기를 먹다나 목구멍에 걸려 숨도 못 쉬고 죽을 고비를 넘긴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하루는 저녁 밥상에 고깃국이 올라와 게눈 감추듯 밥을 말아먹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기운이 없으셔 보신탕을 끓인 것이라 했다. 다 먹고 나서야 해주신 말씀이었는데 헛구역질이 났다. 그러고 보니 학교 다녀온 이후 마당에서 키우던 '바둑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 먹은 게 바로 그 '바둑이'였다.
그땐 그랬다. 키우던 개도 잡아먹던 시절이었다. 직접 매달아 잡고 불에 그슬려 먹었던 보신탕. 직접 목격하진 않았지만 봤다면 충격이 컸으리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끔 보신탕 먹을 기회가 있었다. 수육으로, 탕으로.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왠지 보신탕을 못 먹는다고 하면 어른이 아닌 듯하여 누군가 권하면 피하지 않고 먹었다.
보신탕은 특히 여름철이면 삼계탕과 더불어 보양식으로 인기를 누렸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개고기는 우리 민족의 전통 보양식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먹는 사람이 꽤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보신탕 구경하기가 어려워졌다. 그 많던 보신탕, 영양탕 등의 간판은 이제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사실 개고기 식욕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 벽화에 도살된 개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추정한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화의 물결과 애완견 사육 인구의 증가로 개고기 퇴출운동이 벌어졌고 급기야 법으로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식용을 위해 개를 사육하고 도살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개를 식용으로 판매, 유통하는 행위도 금지됐다. 어기면 최대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다만 법안 공포 후 3년 후부터 시행하기로 해 유예기간을 두었다.
개고기 식용을 둘러싼 논쟁은 그동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야만적이라는 해외 유명인사의 비판이 잇따르면서 문화 충돌로 이어지기도 했다. 비틀스 멤버인 폴 매키트니는 보신탕을 먹는 사람들을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라면서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행위라고 거칠게 비판했다. 그러나 국내 일각에서는 애완견을 식용으로 도축하는 것이 아니라 식용 개는 별도로 사육한다는 점과 한 국가나 민족의 관습을 다른 국가나 민족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보신탕 옹호론으로 맞섰다.
하지만 글로벌화 더불어 반려동물 사육 인구의 급증으로 개고기 옹호론은 더 이상 설자리를 잃고 말았다. 지난해 말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앞으로 개고기를 먹을 의향이 없다는 응답자가 93.4%나 되었다. 전년대비 4.8%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또 응답자의 94.5%는 지난 1년 동안 개고기를 먹은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개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로는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들어서'라는 응답이 53.5%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는 '사육·도살 과정이 잔인해서'(18.4%), '생산·유통 과정이 비위생적일 것 같아서'(8.8%)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2023년 12월에 실시된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와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의 조사 결과)
같은 조사에서 개를 식용으로 사육, 도살, 판매하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에 대한 찬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서는 '법적 금지에 찬성한다'는 응답자가 82.3%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9.5% 포인트 오른 수치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한국 사회에서 개고기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부 개고기 애호가들은 여전히 개고기 금지법을 반대하겠지만 그 목소리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들을 위해 보신탕을 대체할 염소고기 음식점이 늘어나고 있다. 오랜 전통처럼 내려오던 관습도 사회 인식의 변화라는 파고를 만나면 사라지는 것이다.
아 그때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던 '바둑이'가 생각난다. 이참에 오랫동안 키우지 않았던 반려견 한 마리 입양해 키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