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부 내 프락치 침투라는 건 그저 조작된 미끼였다. 그걸 빌미로 죽음의 고문을 가하기 위해 이감응이 지어낸 것이었다.
"어서 말을 하란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이 방에서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못 나갈 거야"
이감응이 잔혹한 눈빛과 어조로 나가노 유키오의 귓전에 속삭였다.
"손나노 시라나잇떼바. 오레오코로세!"
(그런 거 모른다니까. 날 죽여라)
이감응의 눈짓에 도쿄경찰청 소속 형사 두 명이 셔츠 소매를 걷어올리고는 야구 방망이를 집어 든다. 한 사람은 나가노의 등을 한 사람은 나가노의 무릎 위를 차례로 가격한다.
"악!"
나가노가 비명을 지르고는 정신을 잃자 또 다른 형사가 바가지로 찬물을 끼얹는다. 게슴츠레 눈을 뜬 나가노 앞에는 공포의 형사들이 야구방망이를 쥐고 서 있다. 다시 묵직한 방망이가 나가노의 허리와 무릎 위 허벅지를 강타한다. 금세 피멍이 들고 혈관이 터지는 듯하다.
"나가노! 어서 말을 하라니까. 너의 배후조종자가 누군지, 그리고 총독부에 심어놓은 끄나풀이 누군지 발설하란 말이야"
이감응이 다그쳤지만 나가노는 입을 굳게 다문 채였다.
이번엔 고문기술자들이 야구방망이를 내려놓고는 빨간색 고무로 쌓인 펜치를 들고 나타난다. 한 사람은 나가노의 손을 붙잡고 한 사람은 그 붙잡힌 손의 검지를 펴고는 입 벌린 펜치를 손톱에 끼운다. 서서히 잡아당기자 나가노의 입에서 또다시 비명이 쏟아진다.
"으아!"
오른손 검지 손톱이 빠졌다. 그 손톱이 덮고 있던 자리엔 핏물이 고이고 흐물흐물 누런 피부가 드러났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나가노를 짓눌렀다. 이윽고 한 형사가 나가노의 오른손 중지를 붙잡고 다른 형사는 다시 펜치를 벌렸다가 중지 손톱을 지긋이 끼운다. 그리고는 또다시 서서히 잡아당긴다. 나가노의 비명과 함께 손톱은 미끄러지듯 빠진다. 그렇게 나가노의 열 손가락 열 발가락 손톱 발톱이 모두 빠져버렸다. 악랄한 고문기술자들의 고약한 고문에 기절을 여러 차례 했던 나가노는 이제 더 이상 고통이 사라진 듯 되레 편안한 표정이다.
이틀 뒤인 3월 5일
팬티만 입은 나가노가 철 의자에 앉혀져 있다. 손톱 발톱이 모두 빠진 흉측한 손발은 의자 팔걸이와 다리에 사슬로 묶인 채.
고문기술자가 속삭인다.
"오이, 오마에노킨따마오나꾸슨다"
(이봐, 네 불알을 없앨 거야)
불에 달군 인두가 나가노의 사타구니 사이로 다가간다. 나가노는 머릿속에 노리코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 노리코. 난 이제 끝이야. 너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이제 입을 열 때가 되었는데. 다시 한 번 묻겠다. 너의 배후조종자가 누군지, 총독부에 심어둔 첩자가 누군지 어서 말을 하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고자가 될 것이야"
이감응이 야비한 눈빛을 띤 얼굴로 소리쳤다.
"너희들의 이 야만적 행위는 나중에 역사가 평가할 것이야. 용서 못 할 인권 유린과 폭압적 지배를 역사가 반드시 기록할 것이라고"
나가노는 이를 악문 채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으악!"
시뻘겋게 달궈진 인두가 나가노의 고환을 지졌다. 살 타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냄새가 고문실을 진동했다. 나가노의 고환 두 쪽이 뭉개지듯 녹아내리며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나가노와 함께 붙잡힌 나머지 27명의 독립선언문 공동 작성자들도 고문을 피하지 못했다.
같은 날 스가모 형무소의 다른 고문실.
유사한 고문을 당한 듯 18살밖에 안된 여고생 요코타 케이코의 모습도 만신창이였다. 이미 손톱과 발톱은 빠져 있었고 온몸에 멍 자국이 선명했다. 고문기술자들은 케이코를 알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항아리 안에 가두었다. 찬물을 가득 붓고는 다른 바가지에 든 미꾸라지를 항아리에 들이붓는다. 미꾸라지들이 케이코의 몸속을 파고든다. 그냥 만세를 부른 게 그녀의 죄였다. "일본 만세!" 신바시 앞에서 일장기를 휘날리며 일본 만세!를 외친 게 그녀의 죄였다.
"으아!"
항아리에서는 케이코의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미꾸라지들의 공격에 달아나려 해봐야 달아날 수 없는 케이코의 고통이 항아리 속에서 메아리쳤다. 고문관들은 이어 케이코의 긴 생머리에 약품을 발랐다. 머리가 가죽째 벗겨지는 화학약품이었다. 몇 시간 뒤 케이코의 머릿가죽이 통째로 벗겨졌다. 타들어가는 고통과 함께 케이코는 정신을 잃고 항아리 속에서 쓰러졌다. 미꾸라지들이 그녀의 입이며 콧구명이며 온갖 구멍으로 들락거리며 이미 숨 쉬지 않는 그녀를 괴롭힌다.
형사들의 이 끔찍하고도 잔인한 고문은 모두 백여 년 전 일본 순사들이 유관순 열사 등 3.1 만세운동을 한 조선인들에게 가한 잔혹한 고문과 다르지 않았다.
잔혹한 고문에도 일본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무릎 꿇을 기색을 보이지 않자 이감응은 다른 꾀를 낸다. 회유 작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