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가노를 회유하라

한일 전쟁 미래 소설 2045년 (중) 25화

by 윤경민

25. 나가노를 회유하라


열 손톱과 열 발톱 모두 뽑히는 고문에 고환까지 불에 지져 없애는 끔찍한 고문에도 나가노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일본의 독립과 세계 평화 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을 얻지 못하는 한 살아 있는 것의 의미가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생지옥 같은 고문이 있고 열흘 후 이감응이 스가모 형무소를 찾았다.


"이봐 나가노, 몸은 좀 어떤가?"


"..."


나가노는 말이 없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몸을 가누기 조차 힘들 정도였다.


"내가 자네를 근거 없이 의심하고 말았네. 자네의 배후에 누가 있나 싶었더니 아무도 없더군. 자네가 그 조직의 지도자였어. 그리고 총독부에 끄나풀이 있나 싶었는데 깨끗해"


이감응은 침상에 누워 있는 나가노의 머리맡에 다가가 부드러운 어조로 운을 뗐다.


"자네, 대한민국이 왜 일본과 합방했다고 생각하나?"


이감응은 나가노의 대답도 듣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건 말이야, 이 세계의 평화와 미래를 위해서야. 양국이 힘을 합쳐서 한 나라가 되어야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단 말일세. 한국과 일본은 따지고 보면 원래 한 민족, 한 나라와 다름없지 않나. 백제인들과 가야인들이 일본에 건너가 정착했고 천황의 조상과 본인의 몸에도 한반도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말이야"


"..."

서대문 형무소.jpg

(일제 시대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고문과 회유에 시달렸던 서대문 형무소)



"이봐 나가노, 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 자네가 큰 역할을 맡아줘야겠어. 흔쾌히 받아주게나"


나가노는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생각하며 이감응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자네가 총독부 내무 대신을 맡아주게"


일본 독립선언문 작성을 주도하고 일본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자신에게 총독부 내무대신을 맡으라고? 당시 총독부 내무대신은 오다기리 슌페이가 맡고 있었다. 대표적인 친한파로, 누구보다 총독부에 협력하는 인사였다. 그런 오다기리 슌페이를 내치고 자신을 그 자리에 앉히겠다는 건 돌아선 일본 민심을 어떻게든 되돌려보려고 하는 회유책이 분명했고 이제 막 틔우려는 일본 독립운동의 싹을 아예 싹둑 잘라버리겠다는 계산임이 틀림없다고 나가노는 생각했다.


"나는 그런 자리에 오를만한 인물이 아니오. 나는 일본이 독립만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오"


나가노는 한 마디로 거절했다. 이감응의 속이 타들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신바시에서 있었던 3.1 일본 만세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일본인들의 감정이 악화될 대로 악화돼 도쿄뿐 아니라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질 태세였기 때문이다. 반한감정이 들불처럼 번져 통치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분명했다. 국제사회의 여론도 좋지 않았다. 식민지 국가 시민들의 평화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데 대해 주변국과 강대국들이 비난 성명을 줄이어 내고 있었고 일부 국가는 이 문제를 유엔 인권이사회에 회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봐 나가노, 자네를 내무 대신에 앉히려는 것은 자네 한 사람에게 영광을 주려는 게 아닐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열도 주민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미래의 영광을 함께 준비하자는 것이란 말일세. 대통령과 총독 각하의 뜻이니 며칠 더 생각해보고 꼭 받아주시게"


서대문 형무소 1.jpg


이감응은 나가노를 스가모 형무소 내 특실에 배정하고 삼시세끼 긴자의 초밥 등 고급 요리를 제공할 것을 형무소장에게 특별 주문하고 형무소를 떠났다.

물론 나가노는 이감응의 제안을 수용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더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연막작전이 필요했다.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위해서는 일단 형무소에서 나가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었다.

이감응이 만나고 싶다는 나가노의 전갈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그래, 생각 좀 해보셨나? 이게 다 열도 주민들을 위한 일이니 맡아주시게"


"노리코를 만나게 해 주시오"


"자네 애인 나가타 노리코 말인가?"


"그렇소"


"만나게 해 주면 내무대신을 맡겠단 말인가?"


"일단 만나게 해 주시오"


"긍정적인 입장 변화로 받아들이고 자네의 요청을 받아들이겠네"


"고맙소"


노리코와의 면회는 사흘 뒤로 잡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나가노의 스가모 형무소 탈출로 이어질 줄 이감응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한국 조폭 보스 공나석을 제거한 일본 야쿠자 오야붕 야마구치 히데오가 노리코의 독립운동 단체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은 나가노 유키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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