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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민 Jun 20. 2019

 3. 식은땀 흘린 도쿄에서의 첫 운전

도쿄특파원 1095일


< 식은땀 흘린 도쿄에서의 첫 운전>

 

도쿄에 도착한 지 한 달이 가까워지면서

이래 저래 집안 정리가 대충 마무리됐다.

이제 조금은 여유가 생긴 만큼

전임자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승용차를

접수할 순서였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명의변경.

선배가 귀국 전 써준 양도증명서와

'다테미'라는 이름의 중개인이 보내준

각종 서류를 작성했다.

 

그리고 동네에 있는 '다카이도' 경찰서에 가서

차고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일본에서는 차고 증명이 없으면

자동차를 등록할 수 없다.

 

참고로 단독주택의 경우 대부분 주차장이 갖춰져 있지만

맨션의 경우는 주차장이 달려 있더라도 유료다.

 

그것도 한두 푼이 아니다.

우리 집처럼 도쿄 시내에서 벗어난 주택가의 경우는

한 달에 2만천 엔.

선배의 경우는 도심인 신주쿠여서

3만 엔 넘게 냈다 한다.

맨션에 주차장이 없는 경우는

동네 사설 주차장에 계약을 해야 한다.

 

각종 서류를 갖춘 뒤에 할 일은 정식 등록.

'네리마'구에 있는 등록사업소에 가서

또 두 장의 서류에 차종과 차대번호, ....

이름, 주소 등 (꽤 복잡)을 적어 제출하고

등록증을 발부받았다.

자동차세는 출고된 지 10년 넘은 차라

면제를 받는 행운(?)을 잡았다.

 

이제는 운전을 해야 할 차례.

 

비교적 여유 있는 토요일.

회사 주차장에 방치해둔 지 10여 일 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데 어떻게 집에까지 간담?"

 

도쿄 시내 도로지도책을 사놓고 열심히 들여다봤지만

도대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매일 지하철로만 다니다 보니 당연히 지리 감각을 익힐 수가 없었고

겁이 날만도 했다.

"에이 일단 한번 가보자!" 하는 수 없었다.

 

그 순간 구세주가 눈 앞에 나타났다.

차 안에 '나비'(일본에서는 내비게이션을 나비게이션으로 부르는데 줄여서 나비라고 한다. 당시 한국에서 나는 내비게이션을 본 일이 없었다)가 장착돼 있는 게 아닌가?

선배가 무려 15만 엔 (중고차 값은 10만 엔에 불과했다는데)이라는

거액을 주고 산 나비를 그냥 주겠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런데 문제는 사용법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시동을 걸자 '나비'가 켜지면서 "곤니치와"하고 인사를 했지만

그 후로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다.

10여 분간 씨름을 하던 중 눈에 띈 것이 있었다.

리모컨이었다.

이것저것 누르다 보니

'목적지 설정 코너'가 나오는 게 아닌가

"그래, 바로 이거구나"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주소로 찾는 방법, 전화번호로 찾는 방법 등의 메뉴가 있었고

나는 집주소를 입력했다 (입력하는데도 한참 걸렸다)

 

드디어 출발!

목적지가 설정된 나비는 나를 지름길로 인도해주었다.

"300미터 앞에서 우회전하세요"

"바로 앞에서 좌회전하세요"

나비가 나에게 친절하게 길을 안내했다.

나는 나비가 시키는 대로 도심을 관통하는 수도고속도로 신주쿠선

(본의 아니게 700엔이나 되는 거액의 통행료를 내야 했음)

을 따라 달리다 '다카이도' 출구로 나올 수 있었고

출발 40분 만에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도중에 3번 "루트를 벗어났습니다. 루트를 재설정합니다." 하는

나비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첫 운전 치고는 대성공인 셈이었다.

 

선배의 말에 따르면

특파원 중에 도쿄에서 첫 운전 때 집 찾아가는데

하루 종일이 걸렸다는 사람도 있단다.

선배 본인은 4시간이나 걸렸다면서 너털웃음을 쏟아냈다.

 

'나비'를 내게 공짜로 주신 선배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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