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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민 Dec 24. 2019

40. 일본 열도 세 조각 분단

한일 전쟁 미래 소설 2045년 40화

40화 일본 열도 세 조각 분단


2044년 5월 2일, 서울 청와대


오른손에 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청와대를 찾은 이지국 총독에게 유성국 대통령이 말한다.


"이 총독, 몸은 좀 괜찮소? 지난번 폭탄 테러를 당해 몸이 성치 않을 텐데"


이지국 총독이 고개를 떨구며 답한다.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파편 제거 수술을 받고 2주일 입원 치료를 받았더니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구료. 하마터면 황천길 구경할 뻔하지 않았소? 그나저나 일본 열도의 소요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 같은데, 어찌 되고 있소?"


대통령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총독이 시선을 떨구며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상황이 녹록지 않습니다. 독립군 조직이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대중들의 지지가 이어지면서 곳곳에서 걷잡을 수 없는 대규모 독립운동으로 확산될 조짐입니다. 총독부를 비롯한 관공서에 대한 무장 공격도 잦아지고 있고요. 경찰과 군이 일일이 손을 쓰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할 것 아니오?"


대통령의 걱정이 짙게 배인 목소리였다.


"송구하옵니다만 들불처럼 번져가는 무장독립투쟁을 잠재우기 위해선 극약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극약처방? 그게 무엇이오?"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자치권 부여라?"


"네, 독립을 시키는 것은 아니고 그들에게 자치권을 주어 일단 불만을 최소화하는 게 상책인 듯싶습니다. 그리고 열도를 3개 지역으로 나누는 겁니다.  힘을 분열시키는 거죠. 3개 지역으로 쪼개 각각 별도의 자치권을 부여함으로써 적을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자치행정기구에는 친한파 인물을 심어 저희가 배후 조종하도록 하면 일단 현재의 국면은 전환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특히 이번 자치권 부여가 독립으로 가는 단계인 것처럼 언론을 잘 활용해 선전하면 조용해질 것입니다"


귀를 쫑긋 세운 채 듣던 유성국 대통령이 일어서더니 집무실 창밖을 내다본다.

그리고는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외친다.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일세. 당장 실행하세"


"네, 대통령님!"    




2044년 5월 8일 도쿄 총독부


총독의 긴급 기자회견 개최 소식에 브리핑룸이 기자들로 꽉 찼다.

긴급 회견 내용이 뭘지 모른 채 모여든 기자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이지국 총독이 단상에 오른다.


"기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중대 발표가 있어서 여러분을 급하게 모셨습니다.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터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 열도 주민들의 뜻을 존중해 대한민국의 직접통치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일본인들로 구성된 자치행정기구를 발족해 자치권을 부여합니다. 자치행정기구는 3곳에 설치됩니다. 오키나와와 홋카이도에 각각 한 곳씩, 그리고 규슈와 혼슈를 묶은 지역에 한 곳 이렇게 3곳입니다. 국방과 외교는 총독부가 기존처럼 수행하며 자치행정기구 산하에 자치 경찰단을 설치하고 총독부 산하 경찰의 관리 감독을 받습니다. 이것이 1단계이고 1년 경과를 보아가며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2단계로 자치 경찰단의 관리감독권을 자치행정기구에 이전합니다. 이 2단계 조치가 2년간 문제없이 시행될 경우 3단계로 주민투표에 의한 자치행정기구장 선거를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기자들이 손을 들고 질문을 외쳐댔다.


"3곳으로 나눠서 자치행정기구를 설립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게 독립으로 가는 절차입니까?"


"첫 자치행정기구 구성은 총독부가 하는 건가요?"  


쏟아지는 질문을 뒤로한 채 이지국 총독은 총총걸음으로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총독의 발표는 TV를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고 인터넷을 통해 발표 전문이 곧바로 공개됐다.

반응은 엇갈렸다. 일단 한국 정부가 한걸음 물러선 것 아니냐, 자치권을 준다니 나아지겠지 하는 긍정적 반응이 있는가 하면 무장투쟁을 잠재우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일본을 분단시키려는 책략이겠지 하는 부정적 반응이 혼재했다.




오키나와를 별도의 자치행정지역으로 지정한 것은 역사적 배경에서였다.

오키나와는 원래 일본 땅이 아닌 별도의 왕국, 류큐왕국이었다. 1100년대부터 여러 부족이 살던 그 땅에  1429년 통일왕국이 탄생했다.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상로에 위치해있던 만큼 무역 중심지 역할을 했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워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켰을 때는 조선과 동맹관계였다. 그래서 도요토미가 류큐왕국에 식량과 군사 지원을 요구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독자적 문화를 가지고 평화롭게 존재했던 류큐왕국은 1609년, 임진왜란 실패의 타격을 받았던  규슈의 시마즈 다다쓰네의 침공을 받아 국왕이 포로로 잡히는 비극을 맞았다. 2년 후 결국 조공을 바치고 사실상 복속되는 조건으로 왕이 풀려났다. 그래도 명맥은 유지되던 류큐왕국은 1879년 4백50년 왕조의 막을 내리게 된다. 일본이 침략해 왕조를 무너트리고 오키나와현으로 이름을 바꿔 열도에 편입한 것이다.  


오키나와는 또 태평양전쟁 말기 집단자결을 강요당하는 비극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미군의 공격에 포로로 잡히지 말고 천황을 위해 만세를 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세뇌교육에 따라 수많은 학도병과 군인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도 동굴이나 참호 속에서 수류탄을 터뜨려 집단 자결하거나 식구끼리 서로 목을 졸라 죽이는 참사가 발생했다. 특히 당시 오키나와에는 2만 8천 명의 조선인 학도병과 징용병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키나와는 또한 패전에 따라 1951년 미군에 점령당한 후 21년 만인 1972년 일본에 반환되는데 미군 점령기간 수많은 미군 범죄로 인한 반미감정이 들끓기도 한 지역이다. 역사적으로 독립왕국이었던 류큐왕국, 일본의 침략에 복속되더니 미군에 21년간 점령됐다가 다시 일본에 반환되는 역사의 비극을 안고 있는 곳이기에 자치권이 부여되는 것을 오히려 반기는 이들이 많았다. 더구나 원래 오키나와인들은 남방계로 본토 사람들과 생김새도 달랐기에.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도 원래 아이누족이라는 민족이 살던 곳이다. 일본 열도 전체 면적의 5분의 1이나 되는 넓은 섬이지만 추운 지방이라 일본 본토 민족은 살지 않던 곳이다. 아이누족은 체격이 크고 몸에 털이 많은 데다 코가 크고 눈이 움푹 들어가 서구인과 닮은 특징이 있다. 메이지유신 이후 농토 개척을 위한 이주가 시작되며 일본 본토 민족이 살게 된 곳이다.  이들 아이누족은 1800년대 말 소수민족 동화정책에 따라 아이누족의 언어와 관습을 금지당하는 차별에 시달렸다. 이후로도 알게 모르게 일본 민족에 의해 차별을 당해왔던 터라 홋카이도에 대한 자치권 부여를 반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일본의 세 조각 분단은 태동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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