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곳의 자치행정기구는 모두 일본인으로 구성됐지만 총독부의 계획대로 절반 이상이 친한파였다.
무늬만 자치권을 부여한 것이지 사실상 총독부의 배후조종을 받는 기구였다.
일본 민중들의 독립 열기는 식어가면서 일본 독립군의 무장 투쟁도 동력을 잃어갔다.
그렇지만 멈출 순 없었다. 간헐적인 무장 공격이 이어졌다.
2044년 5.8 조치에 따른 열도 3 분리와 자치권 부여가 이뤄진 직후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이상 기류가 포착됐다. 2020년대 중반 시작된 심각한 인종갈등과 멕시코와의 국경분쟁, 극심한 장기 불황에 달러화 약세 등 악재가 겹치면서 잃어버린 20년을 보낸 미국은 이미 세계 슈퍼파워의 자리를 중국에 내준 지 오래였다. 경제력은 7위로 전락했고 군사력도 중국과 러시아, 인도에 뒤진 지 한참 되었다. 통일을 앞둔 남북연합체제의 군사력보다 나을 것이 없을 만큼 추락한 상태였다. 잃어버린 패권을 찾으려는 미국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으면서 국제 정세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정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었다.
언젠가는 전운이 몰려올 것이라는 전망 속에 대한민국 국방부에는 비밀부대가 창설됐다.
일명 317부대. 언제 터질지 모를 핵전쟁과 생화학전에 대비한 각종 실험을 수행하는 부대였다.
2044년 7월 나고야.
방호복과 방독면을 착용한 317부대원들이 부대 내 실험실로 들어간다.
"마우스들 입장"
지휘관의 명령에 방문이 열리더니 속옷 차림의 남녀 8명이 3중 유리창 안의 공간에 들어선다.
"휴로, 실험실 입장"
인공지능이 탑재된 인간형 로봇 '휴로'가 실험실로 들어간다.
"라듐 조사"
지휘관의 명령에 휴로가 실험실 내 상자에서 방사성 물질 라듐을 꺼내 실험 대상자들에게 노출시킨다.
이들 8명은 벌써 한 달째 매일 이런 실험에 이용되고 있다. 어제는 2시간 오늘은 1시간, 1주일 전엔 세슘 137, 2주일 전엔 스트론튬. 각종 방사성 물질이 어느 정도 노출되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간 신체를 대상으로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장기간 노출로 피폭이 심화되면서 이들의 육체는 하루가 다르게 허약해져 갔다.
실험 4개월째에는 아예 핵물질 폭발 실험까지 실시됐다.
밀폐된 격납고에 실험 대상 인간들을 집어넣고 매우 작은 규모의 핵무기를 폭발시키는 실험이었다.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원자탄의 만 분의 1 규모 플루토늄탄을 폭발시키자 격납고 내부가 불덩이가 되었다. 고열로 인해 실험용 인간들의 살갗이 시뻘게지더니 곧바로 녹아내렸다.
살아있던 자들이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울부짖다가 죽어가는 끔찍한 장면을 371 부대원들은 CCTV를 통해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제2 실험실에서는 세균을 이용한 생물학 실험이,
제3 실험실에서는 각종 화학물질을 이용한 화학실험이 실시됐다.
모두 인간 생체 실험이었다.
심지어 살아 있는 어린아이의 장기를 꺼내 실험에 사용하기도 했다. 임산부의 뱃속에 구더기를 넣어 태아를 갉아먹게 하는 것처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야만적이고 비인간적 행위가 비밀 실험실에서 연일 벌어졌다. 그렇게 죽어나간 시신들은 해부되어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잔인한 행위였다.
생체실험에 이용된 사람들은 모두 일본 열도 출신자였다.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던 수감자, 무연고 노숙자가 주를 이뤘다. 이따금씩 전향하지 않는 독립운동가도 포함되었다.
청와대 습격 후 열도로 돌아와 이감응이 이끄는 추격조에 쫓기다 체포된 야쿠자 두목 야마구치 히데오도 이곳 317부대의 실험실에서 최후를 맞는다.
"야마구치! 폭력에 단련된 몸이니 더 오래 견딜까 한 번 실험해보자"
지휘관이 조롱하듯 내뱉자 부대원들이 그의 팔뚝에 주사를 놓는다. 주삿바늘을 빠져나온 세균은 그의 혈관을 따라 돌며 급속도로 증식, 순식간에 온몸에 번지며 혈관은 물론 위장, 식도, 뇌에까지 세균이 침투한다. 결국 눈코입귀 그리고 항문으로까지 번식한 세균이 빠져나오며 야마구치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