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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티 Jan 21. 2021

부록_아이 노 잉글리시

이게 바로 호주 발음

호주는 영어권 국가로 영국식 영어 표현과 호주 고유의 억양과 발음을 쓰는 나라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자주 접하는 미국식 영어와 차이가 있는데, 사실 시드니 같은 대도시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느끼긴 어렵지만 그래도 호주 영어 초보자에게는 분명히 장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 12살 때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가서 2년 간 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호주로 가기 전 언어 장벽이 클 거라고 생각을 못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호주식 영어 때문에 가장 진땀을 흘린 기억을 꼽으라면, 앞서 간단하게 언급했던 시드니 도착한 날 샌드위치 사 먹었을 때, 그리고 H 언니와 탬워스에서 다음 행선지인 그리피스로 가기 전 다른 소도시에서 고기 공장에 구직하러 직접 찾아갔던 때를 꼽고 싶다.


시드니 샌드위치 사건은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지 확신은 없지만 기억상 시드니에 도착한 날에 일어난 일이다. 친구 S가 나를 공항에서 마중한 뒤 셰어 하우스로 가는 길에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러 푸드코트 갔는데, 이리저리 둘러보니 가장 만만해 보이는 샌드위치 가게가 있었다. 별생각 없이 그냥 뚜벅뚜벅 가서 메뉴판에 있는 치킨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아뿔싸, 그때부터 주인아저씨가 압박 면접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브웨이처럼 빵 종류, 소스 종류, 야채 종류를 비롯해 그냥 먹을지 아니면 샌드위치 메이커로 따뜻하게 데워줄지 물어보는 간단한 질문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때는 그냥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마 처음 몇 마디를 못 알아들어서 갑자기 당황한 나머지 그 뒤로 그냥 눈이 캄캄해졌던 것 같은데, 결국에는 그냥 모든 질문에 우물쭈물 yes라고 대답한 꼴이 됐다.


그런데 더 나를 위축시킨 건 아저씨의 태도였다. 처음에는 내가 버벅거리니까 의아해하다 나중에는 정말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재차 정말 이렇게 먹을 거냐고 물어봤다. 이때쯤 되자 이제 너무 지친 나머지 빨리 받아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져서 역시 yes라고 나도 재차 대답했는데, 음식을 받아보니 아저씨의 태도를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끝없는 터널 같은 질문 퍼레이드 끝에 받은 샌드위치는 막 해동한 듯한 차가운 식빵에 소스는커녕 간도 안 된 닭가슴살만이 힘없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아니 겨자라도 있었으면 다행이지, 희끄무레하고 맹숭맹숭한 샌드위치를 받아 든 나는 못 알아들었다는 생각이 부끄러워서 그랬는지 S 앞에서는 별 일 아닌 듯 샌드위치를 입 속으로 욱여넣었다. 심지어 닭은 가슴살이 제일 맛있다는 주장을 해대면서. 하지만 현실은 목은 목대로 막히고 맛 맛대로 없는, 이때까지 먹어본 음식 중 가장 최악이었다.


그리고 위에서 쓴 것처럼 H 언니와 나는 탬워스에서 그리피스로 가기 전 중간에 있는 소도시에서 고기 공장을 직접 찾아간 적이 있다. 당연히 일자리는 얻지 못했지만 그보다도 더욱 기억에 남는 것은 고기 공장으로 가기 위해 탄 택시다. 이미 탬워스에서 경험이 있어서 우리는 고민하지 않고 택시를 타기로 결정했는데,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니었지만 무척이나 친절하기 짝이 없는 택시 운전수 덕분에 나는 가는 길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는 내가 지금까지 봐온 호주인 중 가장 호주 억양이 센 분이다. 이건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여전히 사실이다. 어찌나 호주 억양이 센지 정말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 하루 왠종일 일해도 손님이 있을까 말까 한 완전 깡촌에서 분내 나는 젊은 동양인 여성이 둘이나 탔으니 아저씨가 얼마나 신났겠는가? 그리고 내가 어쭙잖게 거들어주니 (비록 나는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눈먼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맞장구를 쳤을 뿐이었지만.) 아저씨는 마치 모터를 탄 듯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댔다.


그렇게 아저씨 말 알아들으랴, 대충 길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 우리는 결국 고기 공장에 도착했고 볼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아저씨를 한사코, 정말 한사코 말린 뒤 명함 하나 받고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정말 궁금하다. 아저씨는 도대체 무슨 얘기를 했길래 그렇게 박장대소를 하셨을까?


물론 이외에도 언어 장벽을 느낄 때는 수도 없이 많았고 지금도 많다. 그리고 오랫동안 영어를 하고 공부한 결과, 회화는 원어민을 뛰어넘기는 어렵다는 자조적인 결론을 내기리도 했다. 그래도 다행히 워홀을 처음 떠났을 때와 지금의 내가 언어장벽을 대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바로 웃을 수 있는 여유이다. 예전에는 장벽에 부딪히는 순간 당황하고 얼굴이 사색이 됐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문제는 나다라는 생각으로 가끔 나 자신을 괴롭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뭐라고 말했는지 다시 물어볼 수 있는 여유, 잘못 알아들었다는 걸 시인할 수 있는 여유, 거기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지, 혹은 왜 저렇게 개떡같이 말해라며 되레 원어민을 탓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혹시 지금 언어 장벽에 부딫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조언하고 싶다. 


남 탓을 하는 여유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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