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안녕.
전에 잠깐 언급했듯이 에어에서도 나는 역시 징그러운 아저씨를 만났다. 이 분은 혼자 유랑 생활을 하듯 호주 전역에 있는 농장을 순회하는 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혼자셨고 아무래도 본인 나이보다 평균 연령이 훨씬 낮은 농장 워커들과는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못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아저씨가 소외받는 느낌이 들지 않게 이따금 말동무도 해드리고 숙소에 놀러 가기도 했는데, 갈 때마다 본인이 직접 잡은 게 같은 걸로 끓인 매운탕을 드시는 게 특이했다. 물론 한사코 먹어보라고 해서 한 숟갈 겨우 떠먹은 걸로 봤을 때 딱히 요리까지 잘하시는 것 같진 않았지만 당시만 해도 낚시와 자급자족하는 생활 따위에 로망이 있었던 내 눈에는 조금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저씨께 나중에 낚시 가시게 되면 따라가도 되냐고 물었고 아저씨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고 머지않아 나는 아저씨와 낚시 도구를 챙겨 걸어서 한 15분쯤 되는 물가로 길을 나설 수 있었다.
그때까지 낚시는커녕, 낚싯대도 잡아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마냥 들떠있었다. 오늘 가서 잘 배워 놓고 나중에 샘 하고 낚시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도 굳게 먹은 터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아저씨는 제사보다는 젯밥 밥에 더 관심이 가지는 모양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농장에서 만난 여인네들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더니 본인이 가는 농장마다 내 나이쯤 되는 아가씨들이 자기를 너무 좋아해서 곤란하다는 얘길 하며 자신이 무슨 희대의 카사노바라도 되는 냥 말을 했다.
사실 물가까지 실제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이런 쓸데없는 얘기를 들으면서 가니 마치 천리 길을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얘기가 왠지 나를 겨냥해서 하는 것처럼 들려 기분이 점차 나쁘기까지 했다. 거기다 가는 길이 완전히 모래사장이어서 발은 푹푹 잠기지, 낚시 도구 챙기랴, 아저씨의 황당한 얘기에 대꾸하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나 혼자) 우여곡절 끝에 물가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낚시에 대한 흥미가 완전히 식어버린 상태였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빨리 짐 싸서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도 이왕 온 거 찌나 한 번 던져 보자라고 마음을 먹기는 했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고 전화도 안 터지는 곳에서 이 아저씨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나는 아저씨에 대한 신뢰를 잃어서 사실 지렁이 꿰는 법, 낚싯대 던지는 법도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겉으로는 네네, 넙죽넙죽 대답은 잘했다. 아무래도 나 보다 한참 어른이고 좋은 마음이든 흑심이든 낚시를 가르쳐 주시니까 그래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자는 내 피나는 노력이었다. 그리고 하늘도 이런 내 노력에 감동했는지, 복수라는 달콤한 열매를 선물해주었다.
바로 찌를 던지려고 낚싯대를 뒤로 휙 보냈을 때 아저씨 손에 낚시 바늘이 꿰어졌던 것이다. 당연히 이 사실을 몰랐던 나는 바로 찌를 던져버렸고 바늘은 아저씨의 손을 찢어버렸다. 아직도 내 뒤에서 아저씨가 지른 외마디 비명이 생생한데, 고통과 놀람이 똘똘 뭉쳐져 단전부터 급하게 튀어나온 소리였다. 물론 끔찍한 사고지만, 그 순간 죄송한 마음보다는 딸 뻘 되는 여자애한테 집적대더니 꼴좋다는 생각부터 난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다행히 사고의 충격에 비하면 실제 상처는 크지 않았다. 조금 깊이 긁힌 정도로 피가 배어 나오기는 했지만 꼬매야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 길로 짐을 다시 싸서 숙소로 돌아왔는데 오늘 길에 아저씨는 조금 심통이 나 보였고 말수가 확연히 줄어들어 들었지만, 반대로 나는 고소한 마음에 비죽비죽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새 시드니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중개인에게 폼도 다 사인받았겠다, 짐도 다 쌌겠다, 시드니로 돌아가서 새카맣게 타버린 피부가 다시 제 색깔을 찾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중개인이 농사일이 바빠서 공항이 있는 타운즈빌로 못 데려다주겠다고 통보했다. 토사구팽이었다. 괘씸하기도 하고, 그동안 열심히 일해 번 주급의 일부도 수수료 명목으로 꼬박꼬박 가져간 주제에 저럴 수 있나 싶었다. 하지만 이런 비열한 사람일수록 약한 모습을 보여 주면 안 된다는 묘한 자존심이 있는 나는 두말하지 않고 알았다고 한 뒤 카라반 파크 주인의 도움을 받아 택시를 타고 일단 에어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C 언니가 있다는 점이었다. 시기가 잘 맞아떨어져서 나와 함께 시드니로 가기로 했는데, 우리는 뙤약볕 아래 콜택시를 기다리면서 투덜투덜 불평을 하며 기분을 풀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앞에 한 흰 SUV가 멈춰 섰다. 창문을 내린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호주인 아저씨였는데, 조수석에는 아내로 보이는 여자분이 계셨다. 두 분은 우리에게 어디까지 가냐며 물었고 우리는 에어 시내까지 간다고 했다. 그랬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가 태워줄 테니까 어서 타라고 하셨다. 다만, 이때까지 인종을 막론하고 인간들한테 하도 속았더니 이런 순수한 친절함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워낙 깡촌이라 혹시 인신매매단이면 어쩌지라는 좀 허황되지만 가능성이 있는 걱정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이미 콜택시를 불렀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사코 마다했지만 두 분 모두 꽤나 고집이 있으셨고 한 일 분을 옥신각신하다 일단 차에 타게 되었다.
다만 차에 타서 에어에는 왜 가냐는 물음에 사실 공항 셔틀을 타려고 간다고 말하고 나서도 역시 말씨름을 해야 했다. 결국에는 일단 에어에서 내려주는 걸로 합의 보고 나서야 약간 긴장도 풀고 의외로 쉽게 가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저씨는 에어 시내에 도착해서도 차를 멈추지 않았다. 사실 이때 속으로는 뭔가 일이 잘못될까 봐 엄청 놀랐다. 하지만 진짜 나쁜 부부 사기단일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포커페이스로 왜 안 멈추냐고 물었더니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I changed my mind. I'm taking you to the airport."
마음이 바뀌었다고,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는 거였다. 고마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무섭기도 했다. 괜히 탔나 싶었고 언니도 조금 불안한 얼굴이었다. 그냥 에어까지만 데려다주셔도 되는데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죄송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복합적인 감정 때문에 생각에 잠긴 지 몇 십분 후, 우리는 타운즈빌 공항에 무사히 도착해 있었다.
호주인 부부의 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는 내내 의심한 것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조금 더 영어를 잘했더라면 더 진심으로 감사를 드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거기다 같은 인종, 심지어 같은 나라 사람이라서 조금이나마 믿었던 사람은 결국엔 등을 돌렸지만, 마치 남은 시드니 생활도 이런 한줄기 따스함 덕분에 잘 견딜 수 있을 걸 징조하는 듯 생판 남인데도 호주인 부부는 이런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공항 입구에서 느낀 여운을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아 놓고 비행기 탑승을 위해 내딘 발걸음은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