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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티 Apr 10. 2021

존존비어할아버지와 아이들

멜론 농장에서 하루

내가 일했던 에어 멜론 농장은 한국인 중개인, 터키인 중개인 중심으로 워커가 모여드는 곳이었다. 말하자면 이 두 사람은 중개업 사업자를 내고 멜론 농장과 중개 계약을 맺은 사람들이었는데, 실제 농장 슈퍼바이저는 존이라는 말라깽이 백인 할아버지였다. 아주 날씬한 몸을 자랑하셨고 특히 다리가 웬만한 슈퍼모델보다 예뼈서 항상 부러웠지만 워낙 땡볕 아래 오래 일하셔서 그런지 얼굴 곳곳에 깊은 주름이 주룩주룩 패어있었다.


젓가락 다리 존 할아버지는 일이 끝나고 허구한 날 맥주를 마셔대서 예전에 일했던 워커들이 존존 비어라는 애칭을 붙여주고 그 애칭으로 페이스 북 어카운트까지 열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성격도 아주 느긋해서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얼굴을 찌푸리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언제나 하회탈 같은 미소를 짓고 타바코 담배를 여유 있게 마는 모습에서 뭔가 노년의 멋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거기다 주변에 있던 사탕수수 밭 한가운데 마리화나를 길러 그 동네 가장 '큰 손'으로 일한다는 루머가 있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재밌었던 건 한국인 중개인의 할아버지 목격담이었다. 일이 끝나고 펍에 가면 어김없이 존 할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데 이상하게 언제나 주변에 미녀가 즐비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이게 다 누구냐고 물어보면, "They're my cousines(사촌이야, 사촌)" 이런다는 게 이 목격담의 화룡정점이었다. 다만, 이렇게 미녀들이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아서 인지는 몰라도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다수의 이혼 후 재정이 파탄난 나머지 은퇴는 일단 미뤄둔 채 수중에 남은 캠핑카에서 지내시는 게 조금 안타까웠다.


아무튼 이런 존 할아버지의 비호(?) 아래 우리 워커들은 열심히 멜론 씨를 뿌려댔지만 사실 이 씨를 뿌린다는 말은 내가 한 멜론 농사에는 맞지 않는다. 워낙 더워서 씨를 그냥 뿌려버리면 말라죽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 두 뼘 정도 되는 끝이 뾰족한 나무 막대기로 땅에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깊이의 구멍을 판 다음 씨를 넣고 흙으로 덮는 식으로 일했다.


이때, 너무 구멍이 얕으면 씨가 말라죽고 너무 깊으면 새싹이 나오기 너무 힘들어서 죽어버리기 때문에 그 깊이를 잘 조절하는 게 관건이었다. 그리고 적당한 속도로 작업을 해야지 너무 급하게 하다 보면 씨를 담고 있는 플라스틱 통을 엎는 크나큰 불상사가 생기기도 했다. 이건 씨를 잘못 심는 것보다 더욱 큰 문제였는데, 씨 하나하나가 다 결국엔 돈이기도 하고 줍는 데 시간이 워낙 오래 걸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누가 하나 통을 엎으면 여기저기서 "아~~"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고, 존 할아버지의 따스한 하회탈 미소 아래 얼른 수습해야 했다.


런 식으로 밭고랑 처음부터 끝까지 씨를 심었는데, 그냥 동네 주말 농장 비슷한 규모가 아닌 것은 아마 짐작하리라 믿는다. 한 고랑수십 킬로미터에 달했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하루에 두, 세 고랑 정도 했던 것 같다. 그만큼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정말 육체적으로 너무 고된 일이었다. 자비 없이 강하게 내리쬐는 호주 태양 아래,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애매한 자세로 아지랑이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밭에 씨를 심을 때면 어쩔 수 없이 삶과 존재에 대해 고찰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실 일이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나서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 양계장 일도 지루했지만 거긴 그나마 가끔 시비를 거는 수탉들이 있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면, 이 일은 더 단순한 일을 더 많이 해야 해서 더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일할 때 언제나 노래를 듣곤 했는데, 인터넷도 컴퓨터도 없어서 똑같은 플레이리스트를 농장 도착하고 나서 떠날 때까지 반복해서 들었더니 나중에는 리스트에 있는 모든 노래의 가사를 줄줄줄 외울 지경이었다.


물론 이렇게 따분하고 고된 농사 중에도 가끔 신기한 일이 일어나곤 했다. 바로 이따금 야생동물이 나타난 것이다. 제일 처음 본 동물은 에뮤였는데, 에뮤는 타조와 상당히 흡사하다. 외모도 거의 비슷하고 날지 못하는 거대한 새라는 점에서 말이다. 일을 하다 보면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에뮤가 목을 꿀렁이며 느릿느릿 걸어다는 걸 종종 볼 수 있었는데, 호주 아웃백에 딱 어울리는 느긋함을 가진 동물이었다. 다만, 나중에 엄마 선물로 관절염에 좋은 에뮤 오일을 사면서, 농장에서 본 에뮤가 떠올라 도대체 에뮤의 어떤 부위에서 짠 기름일까 고민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에뮤 말고도 땅에 둥지를 틀고 사는 새의 둥지와 그걸 공격하려고 하는 뱀을 본 적도 있다. 당시 둥지에는 알이 몇 개 있었고, 한 1미터쯤 될만한 뱀이 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사실 전 세계에 분포한 40여 개 맹독성 뱀 중 반절 이상이 호주에 사는데, 그 뱀은 맹독류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다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와중에 존 할아버지가 역시 따스한 하회탈 미소를 띤 상태로 삽을 들고 저벅저벅 오시더니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뱀을 반토막 내버렸다. 비록 다 늙은 할아버지였지만 그때는 왠지 남자의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거침없이 삽을 내리꽂았던 거다. 물론 다들 도시생활에 익숙한 워홀러들이었기 때문에 그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고 어떤 이는 소리를 꽥 지르기도 했는데, 존 할아버지가 정말 아무렇기도 않게 너털웃음을 짓고 다시 일이나 하라고 해서 사태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정되었다.


그리고 밭 한 마지기가 끝나면 다른 밭으로 이동할 때도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때는 할아버지 픽업트럭을 타고 이동했는데 짐칸에 앉거나 더욱 스릴을 느끼고 싶다면 차 지붕으로 올라가면 됐다. 나는 일생동안 트럭을 타본 적도 없었거니와 뭔가 지붕에서 땀을 식혀주는 바람을 만끽하는 게 호연지기를 느끼기 안성맞춤으로 보여(다시 말하면 간지 나 보여) 언제나 트럭 지붕으로 열심히 기어올라갔다. 거기다 어릴 적 읽었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 제제가 뽀뚜루까 아저씨 차 뒤에 매달려 박쥐 놀이하는 걸 읽고 내 언젠가 비슷한 일을 꼭 해보겠노라 별렀던 참이어서 더 아득바득 올라갔다. 렇다 보니 뜨거운 공기를 가르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트럭에 몸을 맡길 때면 지루한 농장 생활에 내리는 단비를 맞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트럭도 타고 씨도 한바탕 쏟고 나면 한낮이 되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러면 돌아와서 가장 먼저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고 간단한 간식을 챙겨 먹었다. 워낙 일을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숙소로 돌아와서도 거의 하루 종일 시간이 남았는데, 초반에는 언니들과 수다 떠는 데 집중했다면 중반부터는 언니들은 물론 약방 오빠들이라고 불렀던 오빠들과 함께 어울렸다. 이 오빠들로 말하자면 4명이 팀을 이뤄 농장만 타는 농장 전문가들 옷차림도 그렇고 방에서 매캐한 '약'을 피워대는 습관도 그렇고 영락없는 히피족이었다. 그렇다 보니 같이 어울리다 보면 야생 칠면조를 잡아서 구워 먹었다는 둥 허황된 얘기를 해준다거나 하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모험 비슷한 일도 있었는데 하루는 사탕수수 얘기가 나왔다. 그때 나는 사탕수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또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었는데, 그게 안타까웠는지 그 자리에서 한 오빠가 위에 쓴 그 사탕수수 밭으로 서리를 하러 데려갔다. 밭까지 차를 타고 가서 일단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자마자 얼른 하나를 서리해서 한 입 먹었는데, 섬유질을 꼭꼭 씹을수록 풋풋한 단맛이 배어 나와 신기했다. 마치 잘 익은 수박 같기도 했는데 풀잎 향이 가득 밴 달지 않은 사탕을 먹는 느낌이었다. 거기다 들키면 혼쭐난다고 오빠가 불안해하면서도 즐겁게 서리를 하는 모습이 RPG 게임 퀘스트를 수행하는 느낌까지 들게 해 이때 기억은 더욱 값진 추억으로 남았다.   


그 외에도 남는 시간에 나는 같은 숙소에 묵었던 일본인 친구와 언어 교환을 한다거나, 다른 언니가 가져온 기타로 기타 연습을 한다거나 하면서 놀았다. 그리고 심심하면 벌어지던 술판에 가끔 끼기도 하고, 중개인을 졸라 언니들과 밤에 맥도널드로 마실 가거나 타운 센터에 있는 구세군 가게에서 쇼핑을 가기도 했다. 사실 쇼핑이라고 해봤자 작업복으로 입을 다 늘어진 1불짜리 셔츠, 트레이닝 바지 이런 것들이었지만, 당시에는 그것마저 소중한 시내 구경이었다.


에어에서와 같은 생활은 내가 아마도 평생 다시 겪지 못할, 아니 겪지 않을 생활이다. 이미 양계장, 밭농사를 겪어본 나로서는 사실 농촌 생활에 대한 환상이나 미련이 전혀 없다. 다만, 슈퍼에서 잘 익은 수박이나 멜론을 볼 때면 새카맣게 타서 반들거리는 얼굴들, 존존 비어 할아버지의 여유로운 하회탈 미소, 할아버지의 미소만큼 여유로웠던 에뮤의 느린 발걸음 등이 겹치면서 은근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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