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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Apr 06. 2023

말하기 연습

나를 너에게

4/4 유시민처럼 글쓰기 2일차


*필사하기


<나의 한국 현대사> (돌베개, 2014) p.17

키와 몸무게가 얼마였는지는 모른다. 그 시절에는 다들 집에서 아이를 낳았고, 신생아의 크기와 무게를 측정할 장비도 없었다. 혈액형은 초등학교 신체검사를 받고 처음 알았다. 국가혈액사업이란 게 없어서 병원들이 돈을 주고 피를 사던 시대였고, 수혈을 받아야 할 환자의 가족이나 친지들, 너무 가난해서 피 말고는 팔 것이 없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혈액형을 알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잘 울지 않는 아기였다. 나이 서른에 벌써 5남매를 거두어야 했던 어머니는 내가 울어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배가 고프면 주먹을 빨았고 기저귀가 젖어도 참았다. 심심하면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 하면서 놀았다. 처음 몸을 뒤집었을 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다. 배밀이를 시작했을 때도 일어나 앉았을 때도 그랬다. 부모님은 내가 무엇인가를 새로 해냈다는 사실을 언제나 한발 늦게 발견하곤 했다. 인생은 원래 고독한 것임을 나는 일찍 알아차렸다.



*바꿔 쓰기


요즘 아이들이 돌 사진을 보며 우량아 초우량아 하는 것을 보면 낯설다. 내가 태어난 시절은 지금과 달라서 자기 태어날 때 키와 몸무게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집에서 아이를 낳을 때였고, 연약하게 태어난 아이들은 금방 명을 달리하기도 했기 때문에 오죽하면 몇 해 뒤에 출생신고를 하는 집도 많았다. 요즘엔 건강정보의 기본인 혈액형을 알게 되는 일은 그때는 더더욱 없었다. 국가혈액사업이란 게 없어서 병원에서 돈을 주고 피를 사던 시대였고, 수혈을 받아야 할 환자의 가족이나 친지들, 너무 가난해서 피 말고는 팔 것이 없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혈액형이나 유전병에 대해서는 알 일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아기시절 기억이 없다. 나는 잘 울지 않는 아기였다고 한다. 나는 배가 고프면 주먹을 빨았고, 기저귀가 젖어도 참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 처음 몸을 뒤집었을 때, 배밀이를 시작했을 때, 일어나 앉았을 때도 나는 혼자 있었을 것이다. 나의 부모는 늘 내 울음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나의 아기시절에 대해 얘기해 준 게 별로 없어 내가 아는 그 시절 이야기는 이게 전부다. 그 이후에도 부모님은 내가 무엇인가를 새로 해냈다는 사실을 언제나 한발 늦게 발견하곤 했다. 대신 이것은 기억이 난다. 아주 어렸을 때, 그때도 나는 방에 혼자 있었다. 나는 심심하다고 느꼈지만 그 권태가 아주 익숙했고 나는 두 손을 접었다 폈다 하는 데에 열중해서 그 무료함을 잊어보려고 했다. 나는 그때, 인생은 원래 고독한 것임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단상 쓰기

그래서 유시민이 ‘작가’ ‘언론인’ ‘정치가’가 되었나 보다.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동떨어진 고독 속에서. 나의 변화와 세상의 변화를 알아채는 능력을 길렀고, 이것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 알아봐 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이 사회의 스피커 역할을 자처했는지도 모른다. 나를 너에게, 우리 세상을 너희에게. 당신이 들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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