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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Jun 13. 2018

13. 나미브 사막의 자벌레

어젯밤에는 너어무 추웠다. '사막의 밤'이라는 말을 실감했고 노숙자들이 이래서 자다가 죽는 거구나 깨달았다. 

처음 텐트에 들어가 잠들 무렵에는 추워서 옷을 다 껴입은 채 침낭 안에서도 새우처럼 웅크려 있었다. 그래도 이대로 잠이 들기만 한다면 그럭저럭 아침이 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 바로 여기, 이 생각 때문에 노숙자들이 자다가 죽는구나를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자정이 될수록 밤은 점점 추워졌다. 아까 밤 시간 때의 온도만 유지됐더라도 시간이 가면 내 온기가 침낭 안을 데울 만도 한데, 점점 추워지는지 아무리 있어도 따듯해지지 않았다. 잠이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이 추운데 잠이 들긴 들어야 되니까 노숙자들이 자꾸 술에 취하는 모양인데, 어찌 저찌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추위에 술이 취해서 잠이 든다면 정말 다음 날 아침 눈을 못 뜰지도 모른다.....


자정쯤 남자애들이 우리 텐트로 찾아와 문을 열었다. 자기네들은 도저히 안 되겠다며 차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지은이도 고민하다가 따라 들어갔다. 나는 차 안에서 넷이 쭈그리고 잘 바엔 여기서 무릎 펴고 잠들어보겠다며 텐트에 남았는데, 지은이가 들어가면서 덮고 있던 겨울용 침낭까지 주고 갔는데도 여전히 추웠다. 텐트 안에 지은이 온기가 사라져서 그랬나.. 

침낭 두 개에 쌓여서 발버둥 치고 있는데 차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렸다.

"부르릉......."

히터를 틀려는구나!


아, 도저히 안 되겠다! 

"똑똑똑" "얘들아 나도 들어갈래, 문 열어줘"

"안 들어온다며?ㅋㅋㅋㅋㅋㅋ"

"너무 괴로워. 잠 못 들고 죽을 것 같아..."


그렇게 새벽에 사투를 벌이고 구겨진 몸에 뜨듯한 바람이 들어왔다. 몸이 녹으며 잠이 드는가 싶었다. 

자는 둥 마는 둥 몽몽한데 감은 눈이 조금 환해졌다. 눈을 떠보니 멀리서 동이 터오는지 어슴푸레 빛이 환했다. 

무릎이 쑤시는 걸 겨우 펴면서 눈을 뜨니 5시. 일출시간이 다가온다.

"어우 얘들아, 해 뜬다. 얼른 가자."

밖으로 나가 텐트와 짐들을 주섬주섬 챙겨 트렁크에 넣고 듄 45로 차를 달렸다.



듄 45 Dune 45


아직 지평선에 해가 안 보이는데도 많은 여행자들이 삼삼오오 모이고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산을 오른다. 이 많고 많은 모래산 중 왜 이 모랫더미에 듄 45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일출이 아름답다고 전 세계에 소문이 난 걸까? 희한한 일이야.

같은 곳을 밟는다

어제 엘림듄과 다르게 듄 45는 크기가 꽤 큰 모래 산이다.

모래산의 경사가 아름답지만 능선을 따라 걷는 사람들의 무리 또한 장관이다. 능선이 뾰족하게 날카롭기 때문에 둘이 나란히 걸을 수 없고 꼭 홀로 걸어야 한다. 우리처럼 친구이건, 남매이건 부부이건 간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수는 있지만 나란히는 걸을 수 없고 홀로 걸어야 한다. 얼른 눈에 보이는 사람만 해도 50명은 될 것 같다. 이 사람들이 거대한 모래산을 일렬로 차곡차곡 올라간다. 높은 곳까지 오른 사람들은 이제 막 모래를 밟은 우리에게 까만 콩알만 해 보인다. 

젊은이들의 무리, 젊은 부부, 나이 든 부부, 가족들, 그중에서도 아직 꼬꼬마들을 새벽부터 깨워서 데리고 온 젊은 가족이 눈에 띈다. 이놈들 차에서 비몽사몽 졸음 깨며 왔을 텐데 모래밭에 내리니까 신이 나서 언덕을 타고 오른다. 역시 어린아이들은 금세 기운을 차린다. 100센티나 될까? 이 작은 오누이가 씩씩하게 자기 걸음을 걷고 있다. 통통 튀며 올라가서 멀찌감치 오는 엄마 아빠를 기다리기도 하고, 앞에 아기를 업은 다른 부모가 있으면 속도를 늦춰서 걷기도 한다. 아빠 등에 업힌 아이는 뒤로 고개를 돌려서 자기의 앞 날을 본다.



모래산의 능선은 가파르다. 정상처럼 뾰족한 꼭대기는 없고 꼬불꼬불한 등산로가 아니지만, 일직선으로 뻗은 길을 하염없이 오르다 보면 가장 높은 곳이 어디인지 감도 안 오고 도대체 언제까지 올라야 하나 싶어 지친다. 그러다가 이제 조금 평탄하네? 하면 그곳이 모래산의 정상이다. 그즈음에 모든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털석 주저앉는다. 난간에 다리를 걸고 앉은 것처럼 그 경사에 다들 주 질러 앉는다.

한참을 걸어 속은 덥혀졌는데 사막의 공기는 아직 차가워서 숨을 몰아쉴 때마다 입김이 푹푹 나온다. 목이 추워서 수건을 목에 감고 올랐는데 이제 더워서 벗으면 시린 공기가 뒷덜미로 순식간에 스민다.


매일 뜨는 해님이 왜 어떤 날에는 특별할까?

그건 뜨는 해를 같이 보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이 한 데 모여서 조용히 올라오는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부글대는 태양을 정면으로 쳐다볼 수 있는 때는 하루 중 지금 뿐이다. 산에 조금, 구름에 조금 가려져 있을 때.




해가 떠 오르고 바람도 잦아들었다. 사람들은 일출이 끝나고 이 모래밭을 달려 내려간다.

저쪽에서 남자들이 우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뛰어 내려갔다. 이렇게 발이 푹푹 빠지는 긴 거리를 뛰어내려 가려면 일정한 보폭과 리듬을 유지해야 한다. 나중에는 멈추려야 멈출 수도 없는지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싶게 한 참을 달려간다. 그런 지경이 되면 엎어지지 않으면 멈추기가 쉽지 않다. 재밌는 광경이다.

같이 산을 올랐던 꼬맹이 오누이도 아저씨들 뛰는 게 재밌는지 자기네들도 엉덩이를 아래로 슬슬 민다. 부모님 눈치를 보면서 슬슬 내려가다가 엄마가 가! 라고 하자 쏜살같이 뛰어 내려간다. 꼬꾸라지고 넘어지고 데굴데굴 굴러 내려간다. 유럽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재밌고 강하게 키우나 봐! 남의 아이지만 난 다칠까 봐 아슬아슬한데.. 


(아래 사진에 보면 남자들이 흙먼지를 내며 뛰어 내려가고 있다. 

제일 멀리 있는 남자는 속도조절에 실패해서 멈출 줄 모르고 계속 뛰고 있고 

아직 경사면을 내려오고 있는 남자는 가속이 붙어서 자기 의지로 뛰는 게 아니다 ㅋㅋ

왼쪽 아래 아이들은 줄곧 뛰어내려온 게 아니라 엉덩이로 지지고 엎어지고 구르면서 내려와서 지나온 길이 울퉁불퉁 뭉개져 있다. 사랑스러운 풍경들)

겨우 멈춘 사람들 ㅋㅋㅋㅋ

그래서 우리도 뛰어내리며 놀았다.

이게 뛸 때는 땅에 꼴아박히는 힘이 세서 발이 더 푸욱 푸욱 빠진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기훈이 ㅋㅋㅋㅋㅋ
저 멀리 한 남자가 떼굴떼굴 구르며 내려가고 있음 ㅋㅋㅋㅋ
모래위에 까만 콩 하얀 콩은 사람들.

능선에서 바라보는 풍경

듄 45 아래턱에 있는 유명한 나무! 

난 이제 이 나무가 있는 나미비아의 사진을 보면 여기 듄 45 이구나를 알 수 있다.


이 친구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사람들이 댓글로 "나무야?" "자 벌레야?" 했다. 

(얘들아, 나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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