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기의 힘으로 완독한 벽돌책

불안의 서

by 윤슬


작년에 했던 독서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필사모임 손편지’에서 진행한 ‘벽돌책 함께 읽기’다. 벽돌책은 400쪽 이상의 두꺼운 책을 말하는데 소장만 하고 읽지 않거나 앞부분만 읽다가 금세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나는 재작년에 <<안나 카레니나>> 상권에서 중도하차했다.) 그래서 우리는 비대면 독서모임과 유사한 형태로 함께 읽기를 시작했다. 참가는 자유. 선정한 책은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기간은 10주. 모임장 하리님이 매주 읽을 분량을 나눠주셨다.


<<불안의 서>>를 쓴 포르투갈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는 이 책의 저자를 자신이 아니라, 리스본의 한 회계 사무소 서기인 ‘베르나르두 소아레스’로 설정했다. 이 책은 소아레스가 쓴 단편적인 기록들이자 산문시 같지만 실제로는 페소아의 기록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가 남기는 성찰에는 인간이 느낄 수밖에 없는 부조리와 거기서 파생되는 감정과 생각이 담겨 있다. 그는 권태로운 일상을 관조하고 자조하면서도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섬세함을 가졌다. 자신의 글쓰기에서 한계를 의식하기도 하지만 멈추지 않는 열정을 품고 있기도 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그의 문장, 태도나 감정이 나를 적셔가는 걸 느꼈다. 대체론 나도 그처럼 불안하고 고독해서 잠들기 어려웠고, 때론 황금빛 아침 햇살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내 문장에는 얼마나 깊은 진솔함이 담겨 있나, 언젠간 사라지고 말 이 글이 잠시나마 누군가의 마음에 머무를 수 있나, 그런 고민을 남겼다. 몇 년간 어떤 글을 어떻게 쓰고 싶은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왔지만 늘 답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쓰면서 찾는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막막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불안의 서>>를 만났다. 이 사건은 현재의 인생에 꽤나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이었다. 모임이 없었다면 나는 이 책을 완독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니, 읽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읽게끔 이끌어주고 ‘함께 읽기’를 하면서 중도 하차하지 않게 서로를 붙들어주던 모임 ‘손편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과 다른 글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 또한 궁금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이란 무궁한 가능성의 세계고, 정말 예상치 못한 대로 흘러가는구나 싶다. 거기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게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이라는 걸 매해 깨닫는다. 사람들과 ‘함께’ 읽고 ‘함께’ 쓰면 아무래도 예측할 수 없는 길로 들어서게 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배움이 있고 재미가 있는 것이다. 다음 ‘함께 읽기’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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