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사내규정 만들기

프리랜서의 고통

by 윤슬


중력이 온몸을 짓누른다. 손목, 팔꿈치, 어깨가 뒤틀리고 무릎이 내 무릎이 아닌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인다. 승모근과 뒷목에서 뒤통수로 이어지는 통증이 관자놀이와 턱, 광대까지 번진다. 팔다리가 저려온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문장으로 쓰고 보니 꽤나 심각해보이는 이 증상은 내가 밤샘 작업을 이틀 연속하고서 겪은 신체적 통증이었다. 순간적인 이명과 울렁거림도 동반했다.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에는 공연장 셋업을 하는 밤, 공연이 무탈하게 끝난 후 갖는 뒷풀이 자리, 더불어 밀린 레포트를 쓰거나 기말고사 공부 등 밤을 새는 일이 잦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공연을 준비하면서, 글을 쓰면서 밤을 새는 일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특히 공연 전날과 마감 전날은 불가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공연 준비는 예산과 인력 문제가 걸려 있었고 마감은 책임과 의무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어느 정도 핑계가 섞여 있다. 결국은 좋지 않은 일 습관을 가진 나의 결정 때문인 것이다. 예산도 인력도 필요없이 혼자 하는 글쓰기조차도 미루고 미루다 마감이 다가오면 폭풍같이 12시간 이상을 작업하는 식이었으니. 이런 작업 방식이 서른 무렵까지는 통했다. 무섭게 빠져드는 집중력과 긴장감에 짜릿함까지 느끼기도 했다. 남들이 자고 있는 고요한 새벽에 미친듯이 글을 쓰고 정열적으로 마감을 한 기분은 중독적이도 했다.


여느 때처럼 밤새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몇 시간 동안 스트레칭은 커녕 꼼짝도 않고 앉아서 글을 쓴 뒤 아침 열시쯤 침대에 누웠던 날이다. 앞서 말한 신체 증상이 온몸을 꿰뚫었다. 항상 작용하지만 살면서 의식할 수 없던 공기같은 중력이 거대한 바위가 되어 내 몸을 뭉갰고 땅밑으로 끌어당겼다. 온몸이 그렇게 아픈 건 처음이었다. 다시는 밤을 새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몇 달이 흐르자 고통의 기억보다 마감의 다급함이 앞섰고 또 밤을 샜다. 그리고 같은 증상을 또 겪었다. 사지를 비트는 고통을 네 번쯤 겪고 나서야 해가 뜰 때까지 일하는 밤샘 작업을 겨우 끊어냈다.


그러나 매일 꾸준히 집중하면서 조금씩 일한다는 게 아직도 쉽지 않다. 툭하면 자정을 넘긴다. 나는 글을 쓰다가 멈추는 것에 용기와 연습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스스로 그만! 이라고 외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 화면에 남은 미련에서 고개를 돌리는 것. 고쳐야 할 문장이 떠올라도 잠자리에 드는 것. 언뜻 당연해보이는 행동에 연습이 필요한 건 내 불안과 강박때문이었다.


몸이 망가지고 나서야 나를 돌보지 않는 작업 방식에 스스로 문제 제기를 했다. 나는 나를 착취하는 악덕 사장이고 블랙 기업이었다. 내 불안과 강박이 건강을 해치면서 동시에 더 큰 불안과 강박으로 되돌아오는 악순환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나는 끼니와 간식까지 챙겨 먹는 일, 자정에는 잠자리에 드는 일, 일어나자마자 하는 스트레칭을 나의 사내 규정으로 삼기 시작했다. 솔직히 지금도 지키는 횟수보다 어기는 횟수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정이 생기니까 이전처럼 막무가내로 끼니를 거르거나 무작정 밤샘 작업까지 미루진 않게 된다. 때때로 의식적으로 쉬는 시간을 갖거나 뽀모도로 타이머를 사용해보기도 한다. 나를 돌보면서 일하는 습관이 마음과 몸에 안착하기를 바라면서 어떤 사내 규정이 더 필요한지 생각한다.


아무런 규정도 없을 때는 모든 것이 즉흥적이었다면 규정을 인식하면서부터는 필요한 돌봄과 나에게 맞는 작업 환경을 고려한다. 유튜브나 자기계발 서적에 나오는 것처럼 완벽한 루틴을 만들진 못하지만 최소한 일을 하다가도 동네 한 바퀴 걷기나 스쿼트 3세트, 4시간마다 작업 장소 이동 , 통증이 느껴지면 시간과 상관없이 펜과 키보드를 놓고 휴식 같은 항목의 필요성을 스스로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글을 쓰는 동안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의 폭발적 분출과 집중 대신 편안하고 느슨한 몰입을 추구하기로 한다.


나와의 약속인 사내 규정을 지키다보니 ‘나 제법 프로같다’는 생각에 작은 성취감과 기쁨이 느껴졌다.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의 방식이 작가로서 살기위한 마음과 정신까지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큰 고통 뒤에야 제대로 알게됐다.


백날 책으로 읽어도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봐야 아는 이 어리석음. 정기적인 출퇴근이 없을수록 일정이 자유롭다는 미명하에 나는 나에게 가혹해지고 나를 착취하기 쉬워진다. 마감이나 일에 휘둘릴때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상상했던 작가로서의 삶,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었는지를 곰곰이 되짚어본다.


부디 아프기 전에 몸과 마음이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 환경을 스스로 제공하기를

자신을 노예처럼 삼아 일하지 않기를


지속가능한 글쓰기가 자연스럽고 안온한 일상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