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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달 Dec 07. 2019

도전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칼졸업 후 찾아온 권태기

직장인 3년차가 되니 새로운 도전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싶었다. 52시간이 도입됨에 따라 저녁있는 삶을 확보하며,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는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내가 안일해진 것이 아닌가?' '안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어딘가 모르게 초조해지기만 했다.


우리 사회가 정하는 타임라인

대한민국 사회는 나이에 민감하다. 나이에 맞게 대학졸업-취업-결혼-육아-은퇴 등 수학 공식처럼 정형화된 시간표를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느낌은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보았을 것이다. 다만 요 근래 그 공식을 따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초조함과 조급함의 근원이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했을 때 "감사함을 잃었을 때" 와 "성취 부재"가 답이었다. 그리고 늘 "도전" 이직성공이라는 면에서만 국한하고 있었다. 이직 외에도 "도전"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실천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게? 그게 무슨 도전이야?'

몇 개월 전부터 따릉이를 타고 회사에서 집까지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 스토리에서 아는 지인이 따릉이를 타고 퇴근하는 것을 보며 '와 멋있다' 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따릉이 타고 퇴근한다는 그 자체가 내게 하나의 도전 정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에게? 그게 무슨 도전이야?'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금요일 저녁 강남 테헤란로 길을 가로질러 집까지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기에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계속 생각만 하다가 어느 금요일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지하철이 아닌 따릉이를 타기로 했다. 생각만 하던 일을 드디어 행동으로 실천하니 일단은 기분이 좋았다. "내가 드디어 하는구나" 기분 좋게 따릉이를 타고 가는데 몇 킬로미터를 지나 경사가 계속 이어졌다. 감정선이 재빠르게 행복에서 힘들다로 변했다. 고작 몇 킬로미터 밖에 안 갔는데.  


이제 시작이야

그 고비를 넘기더니 이제는 강남 한복판 인파를 어떻게 뚫고 갈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금요일 퇴근 시간 강남 한복판에서는 자전거를 탈 수가 없었다. 네이버 지도를 잘만 따라가고 있었는데 막상 그 길은 차도로를 위한 길이었지 자전거 도로가 아니어서 헤매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강남을 벗어나긴 했지만 서초에서 터널을 마주했다. 사실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에 조금은 꺼림칙했다. 차를 타고 터널을 지나가면 늘 창문을 닫는 것처럼, 자전거를 타고 터널을 지나가면 얼마나 무장해제인 상태로 지나가는 것인가. 그러나 지금까지 가로질러온 길 중에서 가장 순탄했던 곳은 서초의 서리폴 터널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가장 여유롭게 속도를 낼 수 있었던 곳이었다. 쌩쌩하게 달리면서 다시 기분 좋아졌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됐어, 반납해야겠다

진지하게 따릉이를 반납하고자 가장 격렬하게 느낀 곳은 방배였다. 심지어 눈 앞에 따릉이 대여소가 보였다. 반납해야겠다는 생각과 동시, 지금 이 순간 방배역에서 전철 타는 것도 지옥철이겠다와 '이거 중도 포기 아니야?' 란 생각이 교차했다. 흐트러진 마음 다잡고 계속 달리기로 결정했다. 달리다 보니 방배와 사당의 중간 지점에 경사가 어마어마했다. 자전거가 지나갈 수 있는 도로는 아예 언덕이었다. 난 그때 느꼈다. 한국은 자전거 친화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물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강남구에서 신도림으로 가는 방향은 그랬다.

도림천 길을 통해 목적지까지 가려고 했는데 도통 그 길이 나오질 않았다. 대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보라매공원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보라매공원을 통해 결국 집에 도착했다.


전철로 30분 걸리는 길을 결국 집까지 3시간 16분 만에 도착했다. 다시는 못할 짓이다.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완주"했다는 희열에 웃음이 계속 나왔다. '이게 뭐라고' 하면서 "그래도 해냈구나" 란 성취감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을 달리면서 인생의 곡선을 경험한 것만 같았다.  


왜 갑자기 인생 곡선?

처음 도전하는 시점에는 의욕과 열정이 넘치며 행복하다. (따릉이를 처음 타고 테헤란로를 가로질렀던 그 순간처럼). 그런데 어려움을 맞닥트렸을 때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금요일 저녁 강남 한복판에 자전거와 같이 헤매고 있던 것처럼). 다시 돌아갈까 여기서 그만할까 생각. 이를 악물고 버티니 조금은 괜찮아졌다고 방심하는 순간 더 힘든 고비가 찾아온다. (방배와 사당 중간 지점에 있는 그 험악한 언덕을 지나가야 했던 것처럼). 그러다 진지하게 그만둬야겠다란 생각을 하는데 그 순간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시간이 매몰비용밖에 안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결말은 내가 생각했던 그림으로 마무리되진 않더라도 그래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괜찮은 그림으로 도달할 수도 있겠구나 깨달음. (도림천 길을 가로질러야지 생각했는데 보라매 공원으로 들어서게 됨).

보라매 공원은 예뻤다


처음 시작했던 의욕과 열정을 끝까지 유지할 수는 없다. 흔들리더라도 그만하고 싶더라도  찰나의 순간에 나를 잡아주는 것은 명확한 목표가 있느냐와 없느냐의 차이다. 그리고  목표는 구체적이고 숫자로 나타낼수록 효과적이다. 물론 따릉이 타고 퇴근한다는 도전이 숫자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만 따릉이를 타고 회사에서 집까지 퇴근했다는 것을 실천한 그 자체가 오랜만에 느껴본 성취감이었다. 이 작은 도전이 나비효과가 되어 또다른 결실을 맺도록  계획하고 실행하고 점검하도록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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