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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부 Feb 05. 2022

언어의 재발견

1. 낚시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국내 낚시인구는 2010년 652만명에서 2020년 921만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낚시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걸 보아도 이미 국민 취미가 된듯 싶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유시민 작가도 소문난 낚시꾼이라던데, 그는 이러한 현상을 인문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하다.


우리 몸에는 낚시에 대한 DNA가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다. 낚시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식물을 채집하는 것 다음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양식이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굳이 언어적 구분을 하자면, 당시의 낚시는 어부의 활동에 가깝다. 현대에 있어서 낚시는 취미로 물고기를 잡는 것을 말하는 반면에 어부는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당시는 생존의 문제였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의 죽음으로 목숨을 유지한다. 목숨 앞에서 선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 행위가 용서받을 수 있는 이유다. 현대 사회에 각종 동물을 먹기 위해 만들어진 사업과 그곳에 종사하는 사람을 이상한 눈초리로 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나 대신에 살생을 저지르는 사람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내 손으로 해야 할 살생이었으니.


어부는 죄가 없다. 하지만 낚시꾼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들은 살기위해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다. 살생을 재미로 여기는 사람이다. 물고기는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잘못된 상식이라는 것이 이미 오래 전부터 학계의 다수이론이다. 물고기의 행동이나 생리 분야 등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뇌와는 다른 부위를 통해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노르웨이나 영국의 일부에서는 이미 양식 물고기의 도살에 대한 복지기준을 마련하여, 물고기를 도살하기 전 기절시키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길바닥에 돈이 떨어져 있다. 

별 생각없이 그 돈을 잡는 순간, 손가락은 갈코리에 걸린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다. 인간의 소리 주파수는 외계인에게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발버둥 칠수록 그들은 좋아한다. 인간이 발버둥치는 '손맛'을 잊을 수 없다고.


손과 다리가 잘렸다. 고통에 몸부림친다. 잘라도 꿈틀거린다고 그들은 깔깔거리며 웃는다.

나의 팔 하나가 그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나는 두 눈을 뜨고 보아야 했다.

남은 몸을 펄펄 끓는 물 속에 넣는다.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들에게는 의미없는 몸짓에 불과하다.

그저 젓가락으로 나를 꾹꾹 누를 기회만 제공할 뿐. 나는 이 모든 것을 똑똑히 기억하다 죽는다.



개는 때려잡아야 맛있다며 철봉에 두 다리를 묶어놓고 몽둥이로 패서 잡아먹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공터에서 들리던 '퍽' '퍽' 소리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세월이 얼마나 흘러야 '낚시꾼'이란 단어가 옛말 국어사전에서나 찾는 단어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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