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부 Feb 06. 2022

언어의 재발견

2. 근로기준법

1953년 5월 10일, 대한민국의 법률 제286호로 근로기준법(勤勞基準法)이 제정된다. 한국전쟁의 휴전이 같은 해의 7월 27일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랍다. 전쟁 중에도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한 사회의 기반을 만들려는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놀라운 사실은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 TV 프로그램을 통해 전태일 열사가 살던 시대에도 '1일의 근로시간은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문구가 근로기준법에 적시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때가 바로 1970년이다. 


로봇이 서빙을 하고, 휴대전화로 업무를 처리하고, 우주여행을 시작하는 2022년의 근로기준법은 그대로다. 50년 전의 조항에서 단 한글자도 바꾸지 못했다. 단 한글자도. 언어의 감옥에 갇혔다. 


언어의 감옥에 갇히는 순간,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 인간은 언어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말을 아껴야 한다. 말을 줄이고 생각해야 한다. 언어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1. '근로(勤勞)' : 부지런히 일함

사전의 뜻 풀이다. 일을 함에 있어서는 부지런히 하는 것이 전제조건이 된 것이다. 게을리 일하면 죄다.

'노동'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무엇일까. 세금은 정직하게 내는 것이라며 '정직세법'이라 표현하지 않는데, 왜? 

   

2. '기준(基準) : 사물의 기본이 되는 표준

표준을 이야기할 때 사용되는 단어다. 법은 표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다. 법은 규율이다. 지금 법제처 사이트에 접속해 보자. 법령의 검색란에 '기준'을 넣고 클릭해 보자. 단 하나만이 검색된다. 근로기준법!

민법을 민기준법이라 부르지 않고, 형법을 형기준법이라 부르지 않는다. 소송법을 소송기준법이라 부르지도 않는다. 법의 하위 개념에서만 사용된다. ' ....기준에 대한 규칙', '....기준에 대한 시행령' 처럼.

유독 이 법에만 '기준'을 붙인 이유는 뭘까?


'근로기준법'이 제정되는 순간, 우리는 언어의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일은 열심히 해야만 하는 것이 법이고, 이 법에서 정한 조항은 기준, 즉 기본이 되는 표준이기에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근로기준법에는 '기준'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제3조 근로조건의 기준 : 이 법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은 최저기준이다. 



만약, '근로기준법'이 아니라 '노동 최저기준법' 이라 명명되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최저기준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하루 8시간을 일한다는 건 최대로 일하고 있다는 말이다.

임금으로 따지면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다. 


언어의 감옥에서 탈출한, 앞으로 50년 후의 근로조건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언어의 재발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