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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부 Feb 24. 2022

언어의 재발견

6. 투표

* 대한민국 헌법 제24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


* 공직선거법 제15조

   18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다. 다만, (이하 생략)


집단이 움직이는데 있어서는 약속은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사회에서는 법률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선거권도 마찬가지다. 18세 이상의 국민에게만 권리를 허락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왜?


스물이 되어도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논리적 판단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있고, 반면에 열여섯살에도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이 남다른 청소년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뛰어난 청소년에게 추가로 선거권을 부여할 수도 없고, 조금 부족한 성인에게 기존의 선거권을 빼앗을 수도 없다. 집단에서 개인의 차를 인정하면서 공정한 기준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수 없이 많은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하고 공청회 등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하나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나도 이런 일련의 과정과 그 결과를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법률이 만들어지기까지 복잡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고 반드시 그 의미까지 복잡한 것은 아니다. 법률이 갖고 있는 의미는 명확하고 단순하다. 그렇다면 선거권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집단에서 생활하면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받게 될 사안에 대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주어진거다.

다만, 이 법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스스로에게 주어진 권리를 행사할 '판단능력'이다. 


'능력'은 감당할 수 있는 힘이나 지식을 뜻한다. 따라서 '판단능력'은 판단할 수 있는 힘이나 지식을 말한다. 과거에는 특정신분의 사람에게는 판단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그들에게 권리를 주지 않았다. 그리 오랜과거도 아니다. 여성이란 이유로,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계급이 다르다는 이유로 권리를 주지 않았다. 당시에는 저마다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변하면서 그 기준도 바뀌었을 뿐이다. 


나이에 대한 기준도 계속 바뀌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특정 연령층의 제한에 대하여 미성년자는 정신적, 신체적 자율성이 불충분하다고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선거권을 금지한 것이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말인 즉, 정신적, 신체적 자율성이 불충분한 경우에는 선거권을 금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최근에 변화가 왔죠? 촛불집회의 중심에 젊은이들이 있단 말이죠. 미래는 20대,30대들의 무대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한걸음만 더나아가서 생각해 보면 60대 이상 70대는 투표안해도 괜찮아요. 꼭 그분들이 미래를 결정해 놓을 필요는 없단 말이예요. 그분들은 어쩌면 이제 무대에서 퇴장하실분들이니까….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되고, 다시하면 20대 ,30대는 지금 뭔가 결정하면 미래를 결정하는데 자기의 이해관계가 걸려있잖아요. 

                                                                         (2004년 총선과정에서의 정동영 의원 발언 중에서)



당시에 정동영 의원은 노인폄하라는 프레임에 상당히 시달렸다. 앞뒤 문맥으로 볼 때 일반인이 사석에서 했다면 그리 과한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한다. 다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될 사람의 발언이라면 상황이 많이 다르다.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권리를 포기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는 대통령이 꺼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통령은 권리를 포기하려는 사람에게 권리를 행사하라고 독려하거나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느덧 거의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정동영 의원이 지목했던 당시의 노인이 이제는 80대 이상 90대가 됐다.이 시점에서 그들의 선거권 제한에 대해서 다시금 논의하고 싶다. 앞서 헌법재판소에서도 정신적, 신체적 자율성이 불충분한 특정 연령층에 대한 선거권 제한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80대, 90대가 된 다수의 노인은 정신적, 신체적 자율성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왜 그들의 선거권을 제한하고자 하는 시도가 없는 것일까. 


경험이 정신적, 신체적 자율성의 불충분을 상쇄하는 것일까. 인간에 대한 예의일까. 먹고사는 문제와 연관이 있는 노동과 관련되어서도 60세만 되면 능력이 부족하다며 회사에서 강제로 쫓아낼 수 있는 법률이 존재하는 것을 보아서는 그것도 아닌듯 싶다. 그렇다면 이제 사회적 합의만 이루면 된다. 몇 살을 기준으로 할지. 


추신: 18세를 거꾸로 한 81세는 어떨까?
미래의 공직선거법 제15조 :  18세 이상 81세 이하의 국민은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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