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부 Mar 04. 2022

언어의 재발견

8. 이혼

2020년도 통계를 살펴보면, 혼인건수는 21만 4천건이고, 이혼건수는 10만 7천건이다. 단순히 이 수치만으로 두 쌍중에 한 쌍이 이혼을 한다고 말하는 건 크나큰 해석의 오류다. 여기서 말하는 이혼건수에는 10년전, 20년 전에 혼인한 부부의 이혼건수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별개로 통계청에서는 인구 천명당 이혼건수를 계산한 '조이혼율'이란 통계를 발표한다. 하지만 이러한 통계도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이혼율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누적 통계로 이혼율을 살펴보면 어떨까.

1970년부터 2020년까지 50년동안 대한민국의 혼인건수는 약 1,720만건이라고 한다. 그리고 동 기간 동안 이혼건수는 약 379만건으로 혼인건수 대비 22%에 달한다. 물론 이 수치도 혼인 후 사별 등의 이유로 이혼을 할 수 없는 경우나 서류상으로만 이혼을 하는 경우, 70년도 이전에 혼인하였다가 동 기간에 이혼을 한 경우나 이혼 진행중인 경우 등의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기에 정확한 비율은 아니다. 그렇지만 2020년도 이혼건수의 통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혼인 지속기간 20년 이상의 이혼이 전체 이혼의 37.2%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4년 이하 이혼이 19.8%를 차지하였다고 하니, 오히려 실제 이혼율은 이보다 더 높을지도 모른다. 


혹 그 반대라 하여도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혼율이 아니라 그 절차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2020년 이혼 중 협의이혼이 78.6%, 재판이혼이 21.4%를 차지했다. 현실에서의 이혼은 소송을 통해 진행되는 것보다는 대부분 원만하게 협의에 따라 이루어진다. 다만 주변에서는 소송을 통해 떠들썩한 이혼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기억이 강렬하게 남기 때문에 재판이혼이 많을거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하지만 협의에 따른 이혼도 상당한 시간과 절차를 거쳐야한다. 혼인을 할 경우 혼인의 신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면 되는 반면, 이혼의 경우에는 협의에 의한 경우라 하더라도 등록기준지 또는 주소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신고(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75조)하여야 한다.


즉 국가로부터 허락을 받아야만 이혼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결혼은 신고제이고 이혼은 허가제이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뭘까. 이혼이 신고제로 바뀌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그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일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15949


직장생활을 해 본 사람은 사람관계가 얼마나 힘든지 안다. 직장에서 업무상 만나는 것도 그렇게 힘든데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거나 심지어 물리적 언어적 폭력을 일삼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산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아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알지 못할 거다. 사실 나도 알지 못하고 판사도 알지 못한다. 고통의 수치는 일반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혼제도에 대해 조금 깊이 들어가면 우리나라의 이혼은 유책주의다. OECD 국가에서 시행하는 파탄주의를 도입하기에는 우리의 법률이 아직 상대방 배우자나 자녀에 대한 보호제도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지금의 제도는 여성 배우자가 남편에 의해 쫓겨나는 축출이혼을 방지할 수 있는 효과가 있고, 유책배우자에 의해 상대방 배우자가 일방적 희생을 강요당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해석이다. 또한 유책주의를 따르지만 유책 배우자를 괴롭히기 위한 수단으로 이혼을 거부하는 건 허용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경우, 국가에서는 이혼으로 인하여 상대 배우자나 자녀에게 생계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국가에서 상대방 배우자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재산분할에 관여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혼에 관여하는 건 다른 문제다. 이혼은 개인의 행복 추구권이다. 국가도 할머니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해선 안된다. 이혼에 있어서는 과거 왕이나 성직자로부터 허락을 받던 시대에서 단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작가의 이전글 언어의 재발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