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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부 Sep 26. 2022

여행자의 신발

12. si (yes)


일요일에 나루터에 머물다 가겠다는 예약문자가 울렸습니다.


[여성이고, 반려견은 없다는 숙박 조건을 모두 충족합니다. 숙소 도착 예정시간은 16:00입니다]


아뿔사!

아내가 토요일에 1 2일로 안성을 다녀오기로 되어 있어,

예약을   없도록 '예약불가' 설정했어야 하는데,  날은 제가 깜빡 잊었습니다.

잊었다한들 매일 체크를 하니, 다음 날에는 아마도 '예약불가' 설정을  놓았을 겁니다.

그런데  잠시의 시간을 피해 예약이  것입니다. 간혹 모든 것은 정해진대로 흘러가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녀와의  만남은 강렬했습니다.

검정 원피스와  슈즈의 실루엣도 멋졌지만, 그보다  맘을 흔든건 그녀의 향기였습니다.

특히 냄새에 예민한 제게는, 달콤하면서도 매혹적인 그녀의 향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향에 잠시 취했다고 호스트 본연의 일을 미룰 수는 없겠지요.

특히 아내가 돌아오지 않았기에 남성 호스트인 제가 홀로 안내하는 상황이 게스트에게는 불편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성격까지 향기로운 사람이었습니다. ​


저녁 늦게  한잔을 마시며 결국 저희 부부는 그녀의 인간적인 향기에 취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저희 부부의 연애 이야기를 궁금해 하였고, 운명같은 사랑에 빠지고 싶은데 아직 만나지 못했다 고백합니다.

아마 바쁜 직장 생활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녀는 백신을 만드는 직장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곳이었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취업을 했다니, 얼마나 바쁜 시간을 보내왔을지 짐작이 됩니다.

최근에 공부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며 뇌과학에 관한 관심사로 대화가 이어갔지만,

아쉽게도 제게 급체가 와서 조금은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하고 말았습니다.​


다음 , 그녀의 잠을 방해할까 싶어 작별 인사없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떠난 게스트룸에는 여전히 향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아마도  향이 무척 맘에 들어나 봅니다.

어떤 제품인지 묻지 못한게 못내 아쉬웠습니다. ​


그날 저녁, 그녀에게 문자 한통이 다시 왔습니다.

[저는 안동에  도착을 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향수를 옷장에 두고   같아요.

 번거로우시겠지만 혹시 한번 봐주실  있으실까요?]

이런 우연이 있을  있을까요? 묻지 못한 아쉬움이 저절로 해결이 되었습니다.

게스트룸에 그녀의 향기가 남아 있었다고 느낀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녀가 실수로 향수를 놓고  것입니다.

그 향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Si' 오드 퍼퓸입니다.

이탈리아어로 Si Yes 뜻하며, 2013년에 런칭한 제품으로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케이트 블란쳇이 모델로

홍보한 제품이기도 합니다. 제품 설명을 살펴보니 블랙 커런트와 바닐라의 탑노트, 프리지아와 로즈의 미들노트,

오카녹스와 머스크의 베이스노트가 조화롭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녀에게도 무척이나 어울리는 향입니다.

향수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나루터에 놓고  거라 다행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부탁에 저희 부부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Si"​


(그녀는 저희 부부를 위해 설거지와 청소까지  마치고, 일용할 양식까지 남겨놓고 나루터를 떠났습니다.

 향수의 향처럼 독립적이며 우아한 그녀는 저희 부부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어제보다 멋진 그녀의 내일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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