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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윤 Apr 19. 2024

해고당한 사람에게 말 건네기

참으로 시의적절한 영어



언젠가 Q가 말했다.

Yoon, 내가 보기에 너는 좋은 사람이야.
나한테 좋은 사람의 기준은 [empathy]가
가능한 사람! 네가 그래.


Yoon은 대답한다.

응~ 나는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
너가 그래!!



AM 6 :00  모닝루틴

 EBS 영어회화 라디오를 틀었다. 정리해고가 한참인 요즘 꼭 알아야 하는 시의적절한 영어표현을 찾았다.


라디오에서 배운[ 안타깝다 / 안쓰럽다 / 불쌍하다 / 죄책감]에 관련한 어휘와 용례를 전달한다.


주요 핵심

3인칭 sorry는 가능하지만, 2인칭으로 sorry를 쓰면 무례하다.

I feel sorry for u (x)  -> 2인칭을 대상으로 하면 거의 모욕에 가깝다. 너 꼴좋다~
I‘m sorry to hear that (o)  -> 진정한 연민은 귀를 빌려주는 일


A: Hey, Have u hear about yoon?

B: Yeah, I heard she got fired.

A: Can’t believe she got into an accident right afterwards.

B: I feel soooo sorry for her. (o)




가정 1 , 동료가 해고당한 상황에는 이렇게 말해보자

I feel bad  아이고 참

I feel bad (about this). (본인 때문에 해고당한 상황)

I feel bad for him  아이고, 걔 참 안 됐다.


가정 2, 친구랑 싸우고 다른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상황

You’re an idiot! I feel sorry for you!

넌 바보야… 넌 불쌍한 놈이야!

I feel bad. I said that. I shouldn’t have said that

그렇게 말해서 너무 미안하다. 죄책감이 들어.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A: He worked very hard. Too bad she got fired.

그녀는 아주 열심히 일했어. 그가 해고됐다니 안타까워.

B: I’m sorry to here that. I know you guys were close.

유감이다. 너희들이 친했던 거 알아.

A: Yeah. I feel so bad for her.




 새벽부터 회화공부 하다가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내 생각에 직장에서 좋은 사람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뉴스에서는 모기업이 희망퇴직을 받는다고 연일 보도 중입니다. 이번 기점으로 미처 보이지 않던 생존그늘이 비로소 보입니다. 그리고 16년도 7월로 거슬러 올라가 옆에 미동도 없이 앉아계시던, 아버지 뻘의 차장님이 떠올라서 잠을 설치는 중입니다. Q의 판단기준에 의하면 나도 좋은 사람일지도…내가 좋은 사람인지는 살짝 의문이고 생존에 있어서는 강한 사람(=독한 사람)이라는 건 깨닫는 계기였고요…그러다가 브런치에 너무나도 주관적인 질문을 투척합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요?




‘어떤 의견에 같은 생각을 가지는 것’과 ‘어떤 의견에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 아닌 게 아니라 ‘친구의 말에 동감을 하다’와 ‘친구의 말에 공감을 하다’의 의미를 구별하기 어렵다. ’ 친구의 말에 같은 생각을 가지다 ‘와 ’ 친구의 말에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다 ‘로 바꾸어 보아도 구별이 잘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 동감‘과 ’ 공감‘은 언제든 맞바꾸어 쓸 수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둘은 서로 맞바꾸어 쓸 수 있는 경우보다 그럴 수 없는 경우가 훨씬 많다.

(가) 사람들은 작가의 치열한 저항 의식에 깊이 OO 했다.
(나) 나는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받은 마음의 고통을 십분 OO 했다.

위 예에서 보듯, 공감은 상대의 마음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작가의 저항 의식에 대한 공감은 작가의 세계관으로 받아들이는 일이고, 마음의 고통에 대한 공감은 상대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일이다. 공감은 감정 이입을 통해 타자를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다. 남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능력이기도 하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라는 말은 가능하지만, ’ 동감 능력이 뛰어나다’라는 말은 불가능하다. 동감이 가장 전형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다음과 같이 상대 의견에 가볍게 동조할 때다.

(다)
A : 누구를 막론하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합니다.
B : 동감입니다.

B의 동감입니다 ‘는 옳습니다 “.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라는 뜻으로, A의 의견을 지지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는 단순한 맞장구일 뿐 내면 깊은 곳의 동의나 승복이 아니다.
_ 우리말 어감사전_ 공감과 동감의 차이




서투른 위로는 금물

연민 (commiseratio)이란 자신과 비슷하다고 우리가 상상하는 타인에게서 일어난 해악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사랑과 우정만큼 우리에게 소망 가득한 감정이 또 있을까? 아무도 나의 내면과 감정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데, 특정한 누군가가 내게 관심을 기울이고 나와 함께 있으려고 한다. 음식을 잘못 먹어서 배가 아플 때, 사랑니 때문에 격심한 치통을 겪을 때, 아니면 생리통을 겪을 때도 있다. 아니면 실연의 고통에 빠져 있을 때, 미래가 불안할 때, 부모님의 죽음에 홀로 눈물을 떨구고 있을 때도 있다. 이럴 때 누군가 나의 고통을 함께하고 내게 웃음을 주려고 하고 내 눈물을 닦아 주려고 한다.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가. 물론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나의 고통과 눈물은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인과 친구가 고마운 이유는 그들이 나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불가능한 노력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우리는 상대방이 내게 사랑이나 우정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믿게 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은 사실일까?

, 애인과 친구의 가치를 알려면, 사실 내가 고통에 빠져 있을 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내가 가장 행복할 때에 진짜 애인인지 가짜 애인인지, 혹은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가 당신의 행복을 함께 행복해하고 당신의 불행을 함께 불행해하는 사람 이어야만이 여러분은 자신에게 애인이나 친구가 있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당신의 불행을 위로하면서 상대적으로 자신이 당신보다 행복하다는 사실을 뿌듯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당신이 이혼했거나 실직했다고 치자, 결혼 생활이 평탄하지 않은 친구들 혹은 직장에 불평불만이 많은 친구들이 몰려들어 당신을 위로할 것이다. 그렇지만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그나마 자신에게는 가정과 직장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게 인간이다. _ 강신주의 감정수업_ 연민 P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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