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전 들르는 편의점에는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직원이 있다. 누가 봐도 내가 족히 열 살 이상은 더 어려보이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매번 그 호칭을 사용했다. 미용실이나 옷가게가 아닌 그닥 대화 할 일이 없는 편의점에서 들어 그런지, 굉장히 어색했다. 나는 그럼 무어라고 불러야 할까, 이모. 하지만 딱히 부를 일이 없었다. 물건과 카드를 내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쉽고 간편한 물건들이 즐비한 공간은 언니라는 단어 하나로 동네 맛집 분위기를 냈다.
나에겐 두 명의 언니가 있다. 둘 다 열심히 산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큰 차이점이라면 그들의 수입이다. 매달 천 만원 가까이 버는 언니는 타인에게 꽤나 냉정한 편이다. 한 달에 백 만원 정도 버는 언니는 사람에게 다정한데 그만큼 상처도 쉽게 받았다. 셋이 함께 만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에 나는 종종, 한 언니를 만나 다른 언니의 싫은 모습을 수다거리로 삼곤 했다. 그렇게 결코 만날 일 없는 두 사람은 상대에 대해 이해 못할 점들에 대해서만 듣게 됐다. 세상에 보지 않고도 미워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건 참 쉬운 일이었다.
언니들은 간섭을 잘하는 편이다. 편의점 언니는 (나도 늙어가는 마당에 이모라고 부르기 미안해졌다.) 내게 포인트를 적립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개인정보를 넘기며 어디에 가입하는 일에 예민해졌는데, 볼 때마다 권유하는 통에 선심쓰듯 적립 어플을 다운 받았다. 나름 지키는 소신 중 경제적인 것 몇가지가 있는데, 천 원 이하는 카드를 쓰지 않는다, 천 원 이하는 현금영수증을 하지 않는다, 천 원 이하는 통신사 할인이나 포인트 적립을 하지 않는다, 가 그것들인데 어느날 꽤 모였을 거라 생각했던 포인트가 기대 이상의 낮은 수치를 보였고 그동안의 경제관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천 원에도 민감하게 굴어야 했던 것인가. 언니라는 호칭은 친밀한 정도를 높이는 것과 더불어 서운한 감정 역시 배가하는듯 했다. 이걸 왜 하라고 한거야?
내가 그랬니? 천 만 원짜리 언니는 상대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솜씨를 갖고 있다.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선택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는데, 알면서도 빠져나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불리한 건 기억 못하는 일도 잦았다. 몇 번 겪다보니 나름의 단호한 거절 의사 표현이 늘기도 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백 만 원짜리 언니에게 더 자주 사용했다. 어지간히 나도 못된 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