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부르고 싶은 날이 있다. 심심한 걸 못 참는 나로선 멍 때리는 시간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편이다. 틈만 나면 이야기하고 싶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 적막은 외로움을 배가 시킬 뿐이다. 누군가를 부르고 또 누가 부르면 응하고 이십 대부터 삼십 대 초까지, 부지런히 시간을 쏟았다. 그런데 아주 갑자기 부를 사람도 불러 줄 사람도 없어졌다.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최근 부쩍 누구의 삶도 기분 좋게 축하하거나 여유 있게 응원하고 싶지 않다. 가까운 사이들이 하나둘씩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인생의 순서를 차분하게 따라가는 동안 나는 멈춰 서 있기 때문이다. 비혼 족도 늘고 딩크족도 느는 세상에 결혼 좀 안 하면 어떻고 아기 안 낳으면 어쩌냐 싶다가도, 우습게도 나는 굉장히 성실한 타입이다.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단 한 번도 졸아 본 적도 없고, 고교 내신은 1등급이었다. 대학교 시절 매주 내야 하는 고난도 과제에 모두가 나가떨어질 때도, 밀리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 굉장히 미련하다고 할 정도로 꼬박꼬박 시키는 건 뭐든 해내는 것이 마음 편했다. 그런데 삶의 순서는 왜 이렇게 혼자만 더딘 건지 초조하기 그지없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인데도 혼자서만 엄청난 양의 숙제를 밀린 것 같은 찜찜함으로 살고 있다.
지난주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함께 다닌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그녀 역시 나와 비슷한 직종에 있고 아직 미혼이다. 애인도 없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녀는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점이다. 소위 말하는 ‘덕후’인데 그 모습이 이해가지 않으면서도 꽤 재밌어 보였다. 밀린 숙제 따위는 전혀 걱정 없다는 듯,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시간을 쓰고 돈을 썼다. 그들이 자신을 설사 부르지 않는다 해도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 달려가면 되니까. 갑자기 이제라도 나도 다시 빠순이의 길로 들어서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각자의 삶이고, 모양이 다 같은 수 없다고 해도 다들 비슷한 모습으로 산다. 나만 빼고, 그래서 아무도 부를 수가 없다. 그들 역시 나를 부를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삶의 모양이 달라지면서부터 고민도 달라졌고 계획도 달라졌으니, 대화는 겉돌 것이 분명하기 때문일까.
강아지를 키우고부터 바깥 순이였던 내가 집순이로 바뀐 것도 사실이지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진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내 휴대전화에는 맛있는 음식과 예쁜 카페 사진들이 저장되어 있다. 이미 다녀온 곳보다 가고 싶은 곳이 더 많다. 언제 갈 수 있을지, 누구를 불러 갈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그걸 모으고 있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다.
이쯤 되면 내가 나를 부르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게 바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존감일 테지. 그렇다면 요 몇 주간의 나는 자존감 수치가 굉장히 낮은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