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준

by 아메리카노

오래된 친구와 긴 시간동안 이야기를 하다보면 꽤나 다양한 화제를 만나게 된다. 어제도 그런 날 중 하나였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선택’이다. 특별히 주제를 정한 것도 아니었지만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서있게 되었는지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대학교를 결정한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나는 나름 고등학교때 공부 좀 하던 학생이었는데, (물론 철저하게 내신파) 지금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 비하면 더할나위 없는 성적표였는데 명문대에 진학하진 않았다. 진학 못했다, 역시 맞는 표현일수도 있는데 나는 당시 하나에만 꽂혀 있었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고지식하게도 소설가가 되려면 무조건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해야 하는 줄만 알았다. 요즘 소설가들을 보면 공대를 졸업한 학생도 있고, 그림을 그리던 사람, 공무원인 사람도 있다. 정말 소설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공부를 한 사람들이 문학계로 갔다. 다른 분야에 비해 글이 유난히 진입 장벽이 낮은 탓도 있겠지만, 의외의 경험을 한 사람들이 더 쉽게 소설을 잘 쓰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튼 그렇게 바라던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한 나는 굉장히 정직하게 소설만 읽고 소설만 썼다. 학교에서 배운 것도 많았다. 진짜 소설이 뭔지 알게 됐고 적어도 기본 이상의 수준을 가진 독자로 성장했다. 그래서 대학교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졸업 후 소설가가 되지 못했다.

원하던 꿈대로 직업을 갖게 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집에서 마냥 백수 생활을 할 수 없으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경제 활동에 뛰어들게 되는데, 그 선택의 기로에서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한다. 잘 하는 일을 할 것이냐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냐, 내 경우는 첫 직장부터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보다는 잘 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물론 일은 하나보면 늘게 되어 있어, 하다 보면 이게 진짜 잘하는 일인지 그냥 익숙해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면서, 그런 일을 하게 됐다. 교과서에 문학은 그래도 소설 공부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은 작은 위안이 됐다. 그저 최대한 빨리 취직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고 그나마 학생때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었기에 자연스러운 루트였다. 문득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적합한 사범대를 졸업했다면 더 좋았을 것, 이란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또 쓸데없이 성실한 캐릭터라서 일하다 보니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아예 쉴 틈을 주지 말고 올인할까 싶다가도, 마음을 다잡고는 한다. 그렇게 셀 수도 없이 많은 아이들과 만나 지지고 볶고 하기를 9년차, 아직도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인생에서 큰 선택은 그 두가지였다. 대학과 직장, 그 두 개를 선택하는 기준은 모두 소설가였다. 소설가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라는 꿈을 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도 사부작사부작 소일거리로 쓰거나 읽거나 하는 모든 일들도 목표는 하나다. 무언가 경험해야 하거나 포기해야 한다면 그 기준은 언제나 내게 늘 하나뿐이다.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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