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의 동생

by 아메리카노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동생이랑 가끔 싸운다. 형제자매간에 별 탈 없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겠지만, 비교적 나와 동생은 잘 지내는 편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 동생의 이기적인 태도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울화가 치밀 때가 많다.


다음 생 따위는 없지만 나는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꼭 둘째로 태어나고 싶다. 지금껏 내가 겪은 둘째들은 대개 쉽게 용서받았고 쉽게 도움받았다. 한때는 동생과 나의 단순한 성격차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욕심도 많고 목표, 꿈도 많았다. 반면 동생은 흐르는 대로 있으면 좋고 없음 말고 식의 태도로 살아왔다. 나는 학교 생활도 사회생활도 열심이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학교 생활이나 직장 생활이나, 부모님의 조언이나 도움은 없었다.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넌 알아서 잘하잖아.’였다. 동생은 대학교 원서 쓸 때도 취업 이력서를 쓸 때도 내 손을 빌렸다. 나는 도와줄 언니나 오빠도 없이 꿋꿋하게 헤쳐나갔는데, 늘 동생은 한 발 물러서서 관망했다, 내가 자신을 돕는 것을.


우리 가족을 정말 아끼고 좋아하지만 가끔 울컥하는 순간은, 나에게 배달음식 주문을 시킬 때다. 이것도 열의 아홉은 그럭저럭 넘기지만 유난히 힘들었던 하루의 끝(모든 가족들이 쉴 때 일하고 돌아오는 직업이다 보니 더더욱)에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시키면 화가 난다. 부모님들이야 잘 못한다 쳐도 나보다 어린 동생조차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냥 그 녀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본인이 제일 많이 먹을 피자 주문 조차도.


한 번은 너무 서운해서 엄마랑 둘이 버스 타고 가다가 하소연한 적도 있다. 동생이 취직을 늦게 해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편인데, 그래서 아빠가 아직도 카드를 지원 중이다. 그게 어떤 때는 그러려니 싶다가도 어떤 때는 울컥하고 서운했다. 나는 엄마나 아빠 생각해서 최대한 가진 것을 내놓고 아깝지 않아 하는데, 내가 준 것들을 동생을 위해 쓴다고 생각하면 너무 서러웠다. 엄마는 ‘너도 자식 낳아 봐라, 원래 모자란 놈이 더 마음이 쓰이는 거야.’라고 했다. 그 말을 온전히 공감할 순 없었지만, 그 이후로 나는 엄마한테 더 이상 차별이니 편애니, 하지 않았다. 살면서 중요한 ‘내려놓음’을 그런데 사용하는 셈이다.

집안에 행사나 염려, 이런 것들이 생길 때 형제자매끼리 의지하면 좋다는데 나는 그런 점에선 영 이득이 없다. 지금도 가족의 부양은 거의 내 몫이다. 동생은 늦게 취직했기 때문에 그리고 결혼할 때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에 (요즘 이것도 구시대적 발상이지만) 몹시 몸을 사린다. 나는 부모님께 경제적으로는 정말 아깝지가 않는데 가끔 그래도 동생이 도와주면 더 큰 잔치와 더 큰 선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나보다 더 심각한 동생을 가진 사촌 언니에게 이런 고민을 늘어놓으면, 언니는 그냥 애당초 외동이라고 생각하고 산다고 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동생이 없었다면, 덜 서운하고 덜 화가 났을까.


문득 동생은 나에 대해 생각할까 너무 궁금해진다. 본인 스스로 여러 혜택을 누린 것에 대해 긍정할까? 적어도 부모님이 나보다 자신에게 더 관대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또 내가 자기를 위해 조금은 희생하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고마워 좀 해줬으면. 그렇게만 해줘도 나는 덜 화가 날 것 같다. 사실 가족이랑 싸워 봤자 내 얼굴에 침 뱉는 셈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