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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막 May 09. 2022

EP04 노마드 엔딩

너한테나 추억이지

https://brunch.co.kr/brunchbook/mofdrunkcinema


  <메모리아, 드렁크 시네마> 윤의 시점, 위 내용을 읽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내가 너를 따라 호주로 가 깨달은 게 있다면 단 하나였다. 아, 나는 서울만큼의 대도시가 아니면 살 수 없구나. 내 처참한 영어 실력을 빼고 생각하더라도 정말 최악일 수밖에 없었다. 놀 수 있는 곳은 카페가 전부, 한국의 화려한 옷 스타일과 동떨어진 무난한 옷, 배차간격이 불편한 버스와 크기가 비둘기의 몇 배나 되는 징그러운 조류 등 나는 뭐 하나 즐길만한 것이 없었다. 아, 하나 있다면 인도 요리? (인도 타운 근처였음) 그런 나와 다르게 너는 그리도 좋은지 들떠있었다. 근 1년 동안 집 밖에 나가지도 않고 무기력하게 잠만 자는 네 모습을 봐서 그런가. 나는 그저 좋은 현상이구나, 하고 넘어갔다. 네가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는 게 아니었는데.


 정말 한순간이었다. 너는 여행자로서의 한 달이 끝나자 바로 한국에서의 너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한국인 밑에서 이사 집 청소를 하고 있었고, 너는 처음엔 공장을 알아보다가 집 앞 편의점으로 시선을 돌렸다. 물론 그조차 이내 관둬버리다가 다시 무기력으로 돌아가 버렸다. 나는 그 흐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처참한 영어 실력임에도 끌려온 나도 열심히 일하는데 너는 고작 편의점 일을 왜 못해? 묻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모습에 신물이 날 정도였다. 나는 널 따라서 여기까지 왔는데, 너는 또다시 편한 일만 찾고 있었다. 네가 아파서 그러겠지, 하고 넘어갔다. 나 역시 아팠을 때가 있었고, 무기력에 잠시 일을 쉬었을 때 네가 많이 도와줬으니까 내가 참는 것은 당연했다. 애초에 네가 들고 온 돈이 세 달은 놀아도 될 정도의 돈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묵묵히 일했다. 어차피 사람 사는 곳. 열심히 하다 보면 어딘가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낯선 땅은 집 구조부터 문화까지 달랐고, 여행자로서 문화를 맞이하는 것과 일꾼으로서 맞이하는 건 너무나 다른 문제였다. 나는 매일 눈치를 보면서 일했고, 마지막에는 정말 다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가 일을 옮겼다. 그다음은 하우스키핑이었다. 둘이서 같이 일할 수 있다는 말에 기뻤는데, 역시 내 섣부른 판단이었다. 손이 굼뜬 넌 또 일하기 힘들어했고, 같이 일하는 나는 일당에 비해 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결국 우리는 그만두었다. 우울증에 먹힌 너는 한국에 돌아가자고 했다. 부모님 댁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고. 나는 갈 곳이 없는데.


  이해해야 했다. 내가 아팠을 때 네가 날 돌봤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방 안에 갇혀 죽어가는 나를 잡아 세우고 미래를 정해준 건 너였으니까. 나는 그러니까 똑같이 네게 지지대가 되어줘야 했다. 평소 화가 너무 많아 늘 문제였던 나지만 호주에서만큼은 절대 화를 내지 않았다. 네가 위태로워 보였다는 점도 있지만 나는 큰 문제가 생기면 냉정해지는 편이었다. 감정을 누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아니, 사실 연기였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페르소나가 강한 타입이었고, 나는 내가 해야 할 행동 양상을 따르며 너를 대했다. 내 말에 진심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어찌 되었든 너는 내 장난스러운 행동과 가볍게 여기는 태도에 위로받은 게 눈에 보였다. 거기에 초를 칠 수 없으니 나는 더욱더 장난스레 행동했다. 언제든 한국에 가도 상관없다는 듯이, 오히려 요새 익선동이 뜨고 있는데 마침 가고 싶었다고. 하지만 알아주길 원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너도 알잖아, 나는 돌아갈 곳이 오히려 무서워.


 다행히 엄마는  받아주었다. 처음엔 다른 집을 구할  있도록 보증금을 마련해주겠다고 했지만, 당시의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월세를 벌면서  자신이 없어서 엄마한테 서운하다는 소리까지 하면서 집에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엄마는 거실에서 자야   같다고 했고, 나는 장난식으로 텃세 있는  아니냐고 했다가 엄마의 정색을 보게 되었다. 엄마는 그건 텃세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말이 너는 외부인이라고 들렸다. 맞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그토록 돌아갈 곳이 없어서 무서워하지 않았는가.  곳이 정해지고 나는 모두에게 워킹홀리데이가 망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정말 끝이 다가왔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이제  정신이 무너졌다. 오랜만에  가족들은 나를 불편해했고, 아무도 나와 제대로  대화를 하려 하지 않았으며 자연스레 다들 갈등을 회피하기 바빴다. 매일 아침 독서실에  가족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밤에는 조용히 거실에서 구질구질하게 질질 짰다. 싸우지 않는 것은 좋다. 싸움은 나쁘니까. 그러니 가족들이 나를 묵살시키는 것은 어쩌면 좋은 선택이 될지도 몰랐다. 한국에 돌아온 나를 보고 아빠는 말했다. 너는 가난하니까  열심히 살아야 .  말을 천천히 반복해서 말했다. 결국  인생 네가 책임지라는 뜻이었다. 연을 끊기로  이유엔 무수히 많은 것들이 있었으나 중요한 것은 내가 가족들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안전망은 무슨 지지대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그날 나는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와 연고도 없는 대구로 도망쳤다. 애인 놈이 무책임한 거고, 원망이고 당장 옆에 있어  사람이 필요했다. 짐가방을 들고 대구로 왔을   환대해준 것은 오직 너뿐이었다. 정말로 너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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