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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막 Apr 24. 2022

EP03 제로썸 인간의 연애

너한테나 추억이지

https://brunch.co.kr/brunchbook/mofdrunkcinema


  <메모리아, 드렁크 시네마> 윤의 시점, 위 내용을 읽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누가 더 나은 인간인가를 논하자면 솔직히 너였다. 얼마나 주변에서 말해주던지 모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툭하면 내게 묻곤 했다. ‘괜찮아? 같이 있으면 열등감 느끼지 않아?’ 직설적으로 말해서 한 문장이지 실제 상황에선 돌리고 돌려서 말하느라 몇 분을 소비했는지 기억도 잘나지 않았다. 나도 뭐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나는 가진 게 없었으니 네가 좀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네가 독립영화를 찍겠다고 말하기 이전까지의 이야기다. 그 후의 너는 솔직히 말해서 한심했고,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진 않지만 무능하고 같잖았다.


  너는 영화를 찍겠다고 말했다. 거기에 나는 빼 달라고 못을 박았고, 너는 내 그 요구를 가볍게 무시했다. 그래, 정말 싫었다면 사실 내가 안 하면 되는 문제긴 했다. 다만, 너는 그러면 안 되지. 촬영장에서 본 너는 내 애인이 아닌 어느 누군가의 익명 A였다. 내 애인은 그렇게 무례하고 나를 막 대하지 않았으며 멍청하게 분위기도 못 읽고 제멋대로 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당시의 너를 말하자면 정말 엉망이었다. 도와주러 온 친구를 삼각대 취급하지 않나, 의견을 말하는 사람의 입을 막아버리지 않나. 그렇게 독선적으로 행동할 거면 우리는 왜 네 옆에 있는 걸까. 내가 몇 시간을 들여 만든 콘티를 네가 잊어버렸다며 그냥 없었던 걸로 치부했을 때 나도 모르게 네 뺨을 칠 뻔했지만 잘 참았다. 나는 참았다. 참고 또 참았다. 그동안 내가 잘못한 것들이 많았으니까 내가 참았다. 그 이후는 아니었지만.


  영화 하이라이트를 찍으려고 모인 그날 사람이 엄청 많았다. 엑스트라 단역이었던 나 역시 카메라 앞에 서야 했었는데 너도 알다시피 나는 무대 공포증이 있었다. 학교 발표도 제대로 못하는 나인데 초면으로 가득 찬 사람이 바로 정면에서 날 보고 있는데 어떻게 연기를 하라는 건지. 근데 네가 나한테 언성을 높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게 느껴졌고, 마침 미약한 대인공포증이 있던 나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다른 방으로 도망을 갔다. 그리고 넌 날 따라오지 않았다. 나를 따라오지 않은 게 중요했다. 언제나 날 찾으러 오던 너였는데 그날 너는 네 고양감에 잡아먹혀 나를 모른 척했다. 작은 방에서 나는 담배연기에 숨을 못 쉬겠다고 말하는 친구와 같이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그날 다 같이 흡연을 한다는 사실도 도착하고 알려주었지. 나는 진동하는 시가 냄새에 머리가 다 아팠는데. 나와야 하는 시간인 것을 알았지만 밖에선 떠들고 웃는 소리가 가득했다. 웃음소리가 가득한 곳에서 느끼는 비참함에 다 죽이고 싶었다. 그래서 나오지 못했다. 그런 나를 너는 비난했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냐고. 그에 나는 이런 배려 없는 상황 속에서 내가 왜 무보수 노동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때 너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지. 내가 왜 배려를 해야 하냐고. 그날 네 뺨을 때렸다. 그리고 갈 곳이 없어 동네 하천을 걸어 다니며 생각했다. 넌 뒤졌다고.


  영화는 당연히 망했다. 널 빼고 네 친구들끼리 만날 날, 나는 애들한테 왜 너와 연을 끊지 않냐고,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니 제발 그러라고도 말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면 좀 나았을까? 개판이었다. 너는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나를 보며 다른 애들은 잘 어울리는데 너는 왜 그렇게 못하냐고 했고, 심지어 영화를 때려치우겠다고 했을 땐 약속대로 영화 제작비를 다 물어내라고 했다. 그날 나는 질려버렸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당시 우리는 동거를 하고 있었고, 그 집은 네 집이었다. 안 그래도 홀로 대학 등록금까지 감당하는 학생 신분에서 보증금을 마련하기엔 무리였다. 우리가 헤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도 아닌 그냥 원룸 보증금 때문이었다. 네가 그딴 식으로 말하는데 나라고 멀쩡한 상태로 있을 게 뭐람. 나는 그냥 쌍년으로 있기로 했다. 너한테 빼먹을 거 다 빼먹은 다음에 도망쳐야지.


  마침 나는 가장 바쁜 해를 보냈다. 7시간 근로장학을 쉬지 않고 했고, 학교를 다니면서 과탑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썼으며, 그래도  상은 타고 싶다고 교내 대회까지 나갔다. 낮에는 일정, 밤에는 과제. 너는  시간 속에 끼어들 틈이 없어서 미안하지만 나는 동거를 하고 있음에도 반쯤 너를 잊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네가 아팠다.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하기엔 사실 내가 잘못한  많았다. 심지어  교재비도 네가 도와준 마당에  부탁을 거절하기에도 애매했다.  졸업은 네가 부모 역할을 맡아줘서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감정이 서투른 나는 플러스 마이너스에 시야가 좁아졌고, 네가 마이너스가  크니 앞뒤  잊어버리고 내가 숙여야  때라 여겼다. 이때까지도 나는  이상했다.  감정보다는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우선이라 여겼다. 무엇보다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비행기 값을  내준다는 너의 말에  이겨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했다. 자기 합리화인지 아니면 네가  설득에  이겨서인지 반강제적으로 결국 나는 비행기를 탔고,  같은 호주로 떠나버렸다. 내가 날린 돈이 3-400 원이다.  돈이면 보증금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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