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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막 Jul 30. 2022

Prologue. 물에 빠진 태양

 만약 병이 있다면 우울증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이리 죽고 싶어한 것도, 뜬눈으로 매일 밤을 헤매는 것도 전부 우울해서라고만 여겼다. 나의 조증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성격적 문제일 뿐, 병이란 생각조차 못 하는 날을 수없이 보냈다. 불안함에 가만있지 못하는 것도, 들뜬 기분을 조절할 수 없어 매번 후회로 하루를 보내는 것도, 나의 탓이었다. 원래 난 이랬나. 원래 난 어디에 있었지? 나는 그 어딘가의 끝에서 늘 방황했다. 불면과 기면, 조증과 우울, 폭식과 거식, 분노와 냉정, 동경과 혐오, 고립과 유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허공을 부유했다. 나는 늘 내가 누구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성격일까, 증상일까? 너는 알 수 있니? 옆자리 친구한테 물어보아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답을 구하고 싶어도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너무나 쉽게 게으른 사람이 되었고, 나는 너무나 쉽게 워커홀릭이 되었다. 양극단을 오가는 내 성격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평가에 늘 멍한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지쳐갔을 무렵, 나는 내 성격과 병의 경계선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나는 조울증 환자였다.


 처음 정신과에 가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우울함이 그리 크지 않았기에 가봤자 괜히 시간 낭비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혹시나 갔다가 나의 우울이  별거 아니라고 의학적으로 판명 날까 봐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나의 어둠을 들킬까 봐 괜찮다고 말해왔다. 정말로 괜찮니? 라고 묻는다면 사실은 아니었다. 적막이 가득한 밤은 늘 외로웠고, 화끈거리는 통증은 늘 가슴을 짓눌렀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수압에 눌리다 온몸이 구겨져 버릴 것 같았다. 친구들 앞에서 매번 ‘사실은’이라고 말하다가도 입을 닫아버렸다. 그게 나의 일상이었다. 불행에 등급을 매긴다면 저는 어디에 있을까요? 고작 이 정도에 병원에 가도 될까요? 제가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써도 괜찮을까요?


 끌려가다시피 가게 된 병원에서 진단받은 나의 병은 내게 생소한 단어였다. 양극성 정동 장애 2형. 경조증과 우울증을 오가는 나의 병.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은 게으른 탓이 아니었고, 몸살까지 걸려가면서 일하며 나를 돌보지 못했던 것도 나의 소홀함이 아니었다. 그저 나는 병에 걸린 것이었다. 아마도 나는 안도했다. 이 모든 것이 온전한 나의 결점이 아니기에 다행이라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의심에 몸이 짓눌렸다. 병이 나의 핑계가 되어, 내가 그 속에 숨어버릴까봐 두려웠다. 혹시나, 라는 단어가 내 곁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의 잘못과 병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내 행동 하나하나가 의심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너는 정말로 힘들어서 못 씻고 있니? 너는 정말로 병 때문에 그리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고 있니? 의심에 의심을 더할수록 나는 어디에도 가지 못했다.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수록 무거워진 머리가 버거워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나와 병의 경계선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점점 흔들렸다. 내가 누구였지? 나는 정말 그것을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 원망하지 않는가, 사랑하지 않는가, 의무가 아니었던가,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는가. 모든 문장의 끝에 물음표가 붙었다. 나는. 문장에 ‘나는’ 조차 붙일 수 없었다. 들뜬 기분은 내 것이 아니었고, 축 처지는 우울 또한 내 것이 아니었다. 무엇 하나 나의 소유라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조울증과 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병은 경계선을 뭉개고 들어와 내 삶을 침범했다. 거기서 나는 나를 찾아야 했다. 경계선은 의외인 곳에서 내게 자신을 알렸다. 우울증이 극심해져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날. 침대에 누워 멍하니 밥도 먹지 않고 늘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귓가에 이명이 삐- 울렸다. 귀를 막고 싶었는데 손이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느꼈다. 내가 정말 병에 잠식당했구나. 커다랗게 덮쳐오는 우울 속에 갇히게 돼서야 병과 나 사이의 경계선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희미해진 경계선을 다시 긋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울의 증상, 이것은 조증의 증상, 이것은 원래 내 성격. 까탈스러운 것은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닌 원래 성격이고, 게으른 것은 천성이 아니라 그날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분류와 재조명의 반복. 그 반복 속에는 타인이 필요했다. 구분의 과정을 나 홀로 헤쳐 나갈 수는 없었다. 서랍 속에 간직해온 보석함에는 나를 이끌어준 말들이 있었다. 너는 숲을 지키는 완숙한 태양과 같아. 너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잖아. 내게 있어 나는 병에 짓이겨져 균형을 잃어버린 아이였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 나는 끝까지 내 영역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아이였다. 그럼에도 그 단어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는 것 같아 창피했고, 그래도 내가 해 온 것이 노력이 맞는구나 싶어 고마웠다. 태양과 같은 사람이란 말을 듣자 정말 그 말대로 태양처럼 굳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맞아, 나는 사실 강한 사람이었다. 꿋꿋하게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동시에 내 영역에 커다란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강한 불빛으로 하늘 위에 박혀 내 안의 사람들을 지켜내고 싶었다. 가끔 내가 없어져도 나를 기다려준 사람들.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준 사람들로 인해 나는 다시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를 구성하고 있던 것들에 타인을 뺐다. 가족을 뺐다. 병을 뺐다. 오로지 나만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빼고 나서야 나는 나로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잠시 물에 빠진 태양이었을 뿐, 그곳에서 벗어나 나의 빛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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