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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막 Aug 12. 2022

EP03 믿지 못하는 밤

 결과지를 엄마 앞에 펼쳐 보였다. 엄마는 여전히 믿지 않으려고 했다. 네가 어디가 아파서.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믿기지 않아 하는 엄마의 표정을 본 나는 눈을 내리깔며 엄마의 반응을 기다렸다. 결과지를 본 엄마와 동생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그저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아프다는데. 아프다는 사실을 이렇게 인정받기 힘들다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소리치지 않았다. 종이를 구겨버리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엄마, 나 아파요. 약이 이렇게나 많아요. 조울증이래요. 조증과 울증이 같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라 여겼는데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늦은 밤 나는 흘러가는 전철에 몸을 싣고 내가 사는 고시텔로 돌아갔다. 엄마는 눈만 글썽거릴 뿐 별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의 침묵 속에서 나는 수많은 생각에 잠겨 헤엄쳐야 했다. 엄마한테 담배를 들킨 적이 있었다. 엄마는 내 담배와 라이터를 방바닥에 던지며 내게 말했다. 도대체 왜 이런 걸 펴고 있냐고.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아무 말이나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힘들어서, 너무 힘들어서 폈다고, 그 말만 수백 번 엄마 앞에서 중얼거렸다. 사실은 망가지고 싶었어요. 내가 그냥 망가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는 네가 힘든 게 뭐가 있냐고 말했다. 네가. 어린 네가. 힘든 게 뭐가 있냐고. 그러게요, 엄마. 내가 힘들게 뭐가 있을까요. 나는 그냥 아빠의 실망이 되고 싶었다. 내가 망가지지 않으면 아빠는 자신의 교육이 옳았다고 생각할 테고, 그 수많은 매질에 정당성을 줄 바엔 내 인생을 천천히 망치는 편이 나았다. 물론, 그런 생각으로 정신과에 간 것은 아니었으나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미친놈 밑에서 미친년이 나온 건데. 당연한 일이지.


 그래도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서 병원은 꾸준히 나갔다. 아니, 꾸준히 나가지 않았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밤이었고, 밤을 새우고서라도 병원에 가려고 하면 영업시간이 되기도 전에 잠들어 수많은 시간을 놓쳐버렸다. 병원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맞지 않았다.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곳처럼 여겨졌다. 약을 먹지 못하는 시간은 계속해서 길어져 가는데 나는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어쩌다 병원에 가는 날에도 사실 별거 없었다. 나는 내 생활을 말하고,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커다란 컴퓨터 화면 뒤로 의사 선생님이 요새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 물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하는데 아직 못 구한 게 가장 스트레스라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럼 아르바이트만 구하면 어느 정도 괜찮겠다고 대답했다. 그랬나. 아마 그러겠지. 뭐가 뭐인지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집을 나왔고, 더 이상 나를 때리는 사람은 없고, 돈만 완벽하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별문제가 없는데 나만 정말 유난이었다.


  유난이지. 내가. 별 문제없는데 이렇게 난리를 치는 내가 문제지.


  누구도 나를 때리지 않는데 매일 밤 울고 있는 내가 이상한 거지. 맞아, 그런 거야.


 그런 거야.


 세상이 나를 쳐다보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모두가 나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웃었다. 웃으면 기분이 좋았다. 정말로 기분이 좋아서 웃었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대한 것에 비해 내가 먹은 약은 별 효과가 없었다. 실은 내가 효과를 못 느낀 것에 가까웠다. 여전히 나는 우울했고, 죽고 싶어 했고, 사라져 버리고 싶어 했고, 아 그냥 다 던져버리고 싶다. 침대에 묻혀 녹아 버리고 싶다. 그런 생각만 가득한 밤을 보냈다. 들뜬 감정이 사라졌나? 우울한 감정이 사라졌나? 하나도 모르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래도 약을 계속 먹다 보면 괜찮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들었을 때쯤 병원에 가는 발걸음을 끊어버렸다. 약을 타서 나가는 길에 부름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을 때였다. 나를 훑어본 의사 선생님이 그 말을 하기 전까진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관성처럼 병원에 다녔을 것이다. 의사 선생님이 나를 잡고 말했다. 살 좀 빼야겠어요. 다리에 살이 좀 많네. 그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오면서 내가 왜 그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지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없었다. 내가 이런 평가를 들어야 하나? 정신적인 문제를 치료하는 곳에서 남의 콤플렉스를 건들다니. 순식간에 깨져버린 믿음에 병원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


 포기했다니까? 그런데도 애인은 내가 병원에 가길 원했다. 밤마다 자지 못해서 울고, 울음을 그치다 새벽에 밖을 나돌아 다니고. 제발 수면제라도 받아오라며 애인이 직접 병원까지 찾아다 주었다. 애인의 정성을 무시할 수 없어서 결국 나는 두 번째 병원에 끌려가다시피 들어가게 되었다. 두 번째 병원에는 나이를 지긋하게 드신 의사 선생님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바로 약을 내려주었다. 딱 보아도 내게 관심이 없는 것이 보였다. 오히려 그게 나를 편하게 만들었다. 전형적인 가정폭력에서 자란 아이. 너무 지루하지 않은가. 클리셰 덩어리 같은 이야기인데 말하기조차 귀찮았다. 어차피 불면증만 해결되면 되는 문제라 나는 대충 조울증 약과 수면제를 처방 받고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약을 먹을 때마다 식도에 뭐가 걸린 듯이 아팠다. 처음에는 물을 덜 먹어서 약이 걸린 것이라 여겼다. 물을 아무리 마셔도, 약을 아무리 부셔 먹어도 식도에 뭐가 걸린 듯이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나는 자야 했으니까 꾸역꾸역 약을 집어 먹었다. 이게 부작용인지도 모른 채 순순히 삼켰다. 몇 주가 지나자 더 이상 참기가 어려웠다. 의사 선생님에게 약을 먹을 때마다 속이 아프다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이상하다며 몇 번씩이나 약을 바꿔주었다. 그런데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나는 계속 아팠고, 잠이 오지 않은 밤은 쭉 이어졌다. 왜. 왜 이렇게 약을 먹어도 아프지. 왜 약을 먹어도 잠이 들지 못하지. 나의 불면증이 불안보다는 공포에 가까웠기에 어느새 나는 수면제를 버티고 있었다. 잠이 드는 게 무서웠다.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게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온몸이 경직되어 망치로 누군가가 나를 살살 치는 것 같았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아도 낯선 소리가 들리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나는 밀림 속에 사는 애였다. 아프다고 아무리 말해도 변하는 게 없자 결국 멋대로 단약을 해버렸다. 가뜩이나 정신적으로 아픈데 육체적으로도 아프고 싶지 않았다. 매일 가슴께를 부여잡으며 웅크리고 자는 것도 지겨워 죽을 것 같았다. 이제 싫었다. 낫기 위해 애쓰는 것조차 지겨웠다. 어차피 몇 년 동안 잘 자지도 못한 거 앞으로도 그렇게 살지 뭐. 나는 또다시 병원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 단약의 여파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우울의 시기가 워낙 컸을 때라 우울에 가려져 보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무엇보다 나는 낫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그러다 죽고 싶을 때 죽지 못하게 되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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