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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막 Aug 14. 2022

EP02 구멍 난 풍선은 아래로

 과거를 떠올리면 늘 소설책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의 이야기를 내 입으로 읊는 기분. 온전히 나에 대해 말해야 하는 그 작은 방에서 나는 낯섦을 느끼고 있었다. 과외쌤 추천으로 심리상담을 받았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입을 움직이고 있지만 어쩐지 멍한 느낌에 졸리기까지 했다. 상담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종종 힘들었겠다고 말했다. 힘들었나? 그래, 힘들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인 이야기였다. 나는 울어야 했는데 눈물이 나지 않았고, 힘든 과거를 털어놓아야 했으나 힘들었던 과거의 이야기를 했을 뿐, 그 이상이 되지 않았다. 내 말이 끝나면 상담 선생님은 말하곤 했다. 본인이 왜 그렇게 도망치려고 했는지 알아요? 끝내 상처받게 될까 봐 그랬던 거예요. 나도 아는 이야기. 그랬겠지. 내가 상처받을까 봐 도망갔겠지. 그럼 이유 없이 도망갔을까. 와닿지 않았다. 와닿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까 상담은 어느새 지루해졌다.


 나는 늘 관성처럼 행동했다. 관성처럼 아르바이트를 하고, 관성처럼 정해진 날짜에 상담받고, 관성처럼 밤에 누워 잠에 들려고 애썼다. 그러나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아르바이트는 여전히 힘들었고, 상담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으며, 밤은 고통스러웠다. 나는 내 이야기를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 있어 내 이야기는 재미없기 짝이 없는 전형적인 가정폭력의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는 소설로 나와도 사람들이 아, 많이 본 이야기! 하고 덮어버릴 게 분명했다. 그런데 왜 제 이야기해야 하죠? 오히려 과외쌤과 이야기하는 편이 더 좋았다. 과외쌤과 있다 보면 어느새 나는 울고 싶지 않아도 울고 있었고, 마지막엔 이해받았다는 느낌에 안도했다. 잘못되었다. 둘이 바뀌어야 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과외쌤한테 의지하고 있으면서도 상담 선생님께는 경계선을 그은 채 유대감을 느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알고는 있었음에도 어찌할 바를 못 했다. 상담 선생님과 같이 고민해볼 문제지만 묻는 법을 모르는 나는 입조차 떨어지지 않았다. 상담 선생님, 선생님은 저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부모님에게 이해받지 못한 날이 길어서일까. 불신은 너무나 깊었고,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줄 거라는 기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깊어졌지만 내 마음에서 썩어갈 뿐이었다. 누구에 대한 원망이었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부모였을까, 상담 선생님이었을까, 끝내 나에 대한 원망이었을까. 정해진 행동 양상처럼 움직이는 내가 심즈 게임의 심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었다. 모든 행동에 의욕이 떨어졌다. 조증으로 생긴 격양감과 흥분이 떨어지면서 어느새 나는 무기력과 우울함 속에서 헤맸다. 그러면 어떡할 거야? 그래도 일해야지. 굶어 죽을 거 아니잖아. 나는 일을 했다. 고깃집에서 일했다가, 화장품 내레이터 일했다가 편의점에서 바코드를 찍으며 일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들어도 나는 아, 하고 멈칫했다가 정해진 관습에 따른 대답을 내놓곤 했다. 재미없고 지루한 나의 대답들.


 당시 문창과 소설 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나는 글을 못 쓰게 되었다. 무슨 이야기를 내놓아도 그저 그랬다. 내가 썼음에도 나한테 그저 그런 글은? 당연히 형편없었다.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글인데 어떻게 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심정에 대한 서술은 없고, 온통 주인공의 행동에만 초점이 잡힌 글이었다. 내 글을 본 과외쌤은 참아왔던 한숨을 터트리면서 말했다. 쌤이 생각해봤는데 너는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어. 당연한 이야기야. 네가 너에 대한 공감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한테 공감하겠어. 네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분노뿐이야. 네가 네 감정을 억압하는데 어떻게 공감을 해.


 선생님 저는 어떡하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겠어요. 실은 느끼고 싶지 않아요. 나는 감정이 싫어요. 우는 것도 싫고, 웃는 것도 싫고, 기쁜 것도 싫고, 슬픈 것도 죄다 싫어요. 그냥 메마른 바위처럼 내 자리를 지키고 싶은 게 내 욕심이고 바람이에요. 하지만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내가 울면 뭐가 달라질까요? 나를 향한 아빠의 매질만 심해질 뿐이죠. 내가 웃으면 뭐가 달라질까요? 당장은 뭐가 나아지겠지만 내 속은 점점 죽어가겠죠. 기쁨은 잠시고 상실은 너무 크게 내 몸에 남아버려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저는 살아야죠.


 어쩌겠습니까. 저는 일을 하러 가야죠.


 아르바이트에서 해고당했다. 일을 너무 대충 한다는 이유였다. 내 잘못이었다. 납득이 가는 이유에 바로 수긍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한테서 비상용 카드를 그만 쓰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바로 외로워졌으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장 돈이 없지만 죄송하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입시를 그만두었다. 입시에서 떨어진 것을 내가 어떻게 할까. 나는 죽고 싶었다. 그러나 죽을 수 없었다. 죽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이었으니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무력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워만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움직이는 노트북 화면만 본 채 누워만 있었다. 누워만 있는 게 살아만 있는 것 같았다. 애인은 울면서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나가라도 보자며 나를 달랬고, 어떻게든 다시 시작해보자며 자기 돈으로 수능 문제집까지 사주었다. 애인이 내 손에 펜을 쥐여줄 때마다 손에 힘을 주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씻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 밖에도 나가지 않았다. 밥도 누군가 챙겨줘야지만 먹었다. 남들의 기본적인 생활 자체가 이렇게 힘들어지다니. 분명 나는 불면증이었는데 어느새 종일 눈을 감은 채 잠만 자고 있었다. 기면증이 왔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았다. 매일 자는 나를 게으르고 한심한 사람처럼 말하며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손조차 흔들지 못했다. 말이, 손이 너무 힘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애인이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 대신 돈을 벌며 먹여 살리는 꼴을 보는데 어떻게 죄책감을 안 느낄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그때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제발 나를 버려줘.


 나를 버리면 네가 편해지지 않을까. 가족들도 나를 버거워하는데. 너라도 나를 버려야 하지 않을까. 나도 나를 반쯤 포기했는데 너는 왜 나를 포기하지 않을까.


 생각이 멈췄다. 잠에 빠진 나는 생각하는 걸 포기했다.


 애인은 계속 나를 계속 일으켜 세웠다. 자신이 대신 가족이 되어주겠다며 제발 포기하지 말라며 내 입에 밥을 넣어주었다. 대신 대학을 알아봐 주고, 내 내신 기록까지 떼 오면서 갈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 나를 위해 내가 지금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직업과 그 과정을 상세히 알려주며 어떻게든 내 손에 펜을 쥐게 했다. 반강제적으로 대학 원서를 넣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며 산책하러 나갔다. 잠들지 못하는 날에는 애인까지 밤을 새우면서 내 곁에 있어 주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계속 누워있을 수 있을까.


 내겐 미래가 없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긴 했지만 당장 글을 배우고 싶어서였지 글을 직업으로 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대충 직업을 얻고, 대충 돈을 벌고, 대충 살게 될 것이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나는 영원히 이따위로 살겠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나는 영원히 가난하게 살겠지. 가족들도 나를 도울 수 없는데 누가 내게 도움을 주려고 하겠어. 하지만 애인은 나에게 다른 미래를 말해주었다. 우리는 같이 살 수 있을 거야. 새로운 집을 얻고, 고양이들과 살면서 내일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안 되면 우리 부모님에게 도움을 구해서라도 그렇게 만들 거야. 다소 철없는 말이었지만 되려 그런 애인의 결심이 내게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당장은 낫기 힘들었다. 밥을 먹는 것도, 씻는 것도, 나가는 것도, 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여전히 머리가 깨지도록 아팠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데이트를 했다. 서울 여기저기 나돌아 다니며 각종 맛집을 다니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웃는 사진을 몇 장 찍다 보니까 내가 정말 즐거워 보였다. 나는 즐거워서 웃었을까, 웃어서 즐거웠을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잠들지 못한 밤에는 미래에 대해 말했다. 너무 먼 미래보다는 단기적인 미래. 나중에 여유가 되면 요리를 배우고 싶어, 요즘에는 코트가 예쁘던데 겨울에 하나 살까 봐, 겨울에는 같이 붕어빵을 왕창 시켜서 먹자. 그럼 겨울까지는 기다려야겠네.


 겨울에는 내가 있을까. 어차피 있겠지. 죽지도 못하고 있겠지.


 그래도 애인의 계획에는 내가 있었다. 남의 미래에 내가 있다는 사실 낯설면서 신기했다. 마치 영원히 부유할 것 같이 떠돌다 드디어 땅에 착지한 기분이었다. 네가 나의 중력이 될 수 있을까. 가늠과 의심의 반복이었지만 너는 알 바 아니라는 듯이 내 불신을 무시했다. 뭔가 우스워졌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우직하게 하나만 밀고 있는 애 앞에서 뭘 그렇게 의심했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내가 너무 웃겨서 참을 수가 없었다. 네 미래에 내가 있겠지. 그렇다면 괜찮지 않을까. 너는 너무 낙관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만들 힘이 있는 애니까 나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 나는 몰라도 너는 할 수 있겠지. 내가 아니라 널 믿으면 괜찮겠지.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밝은 목소리와 예의 바른 태도만 있어도 구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였다. 심지어 나는 경력도 많은 편인데 잘 안 구해질 리가 없었다. 무기력에 잡아먹혀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만화카페 일을 하면서 천천히 일상을 복귀하는데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예산을 짜고, 가끔 산책하러 나가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니 합격 문자가 왔다. 대학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원하는 과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정한 미래의 시작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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