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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막 Aug 15. 2022

EP03 구멍 난 풍선은 위로

 이건 나쁜 게 아니잖아. 정말로 열심히 살았다. 매일 뜨거워진 머리와 코를 부여잡으며 아르바이트하고 학교에 다녔다. 에이를 받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첫 학기를 제외하고는 등록금을 내지 않았다. 교수님의 눈에 드는 건 늘 즐거웠다. 다른 애들이 넌 뭘 해도 될 애라고 할 때마다 즐거움에 눈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내가 술·담배를 하는 것도 아니잖아? 게임중독보다는 낫지 않아? 성취감도 중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나를 갉아먹는 중독이 그림자에 숨어있을 것이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못 하는 쓸모없는 사람에서 순식간에 유능한 사람이 되었다. 이전까지의 나는 분명 게으르고 한심한 인간이었는데 학교에 다니자 성실하고 열정적인 애로 뒤집혔다. 그럴 때마다 우울증 때 떠난 사람들이 생각이 났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일했다. 당장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 뭐든지 결국엔 해냈다.  아르바이트를 8시간씩 하면서 학교에 다녔고, 그러면서도 과탑을 놓치지 않았다. 잠 못 드는 새벽은 과제 시간으로 대체되었고, 넘쳐흐르는 에너지는 유흥이 아닌 일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펜을 쥐고 있자면 늘 긴장감이 돌았다. 에이플러스를 받아야 해. 안전하게 에이플러스를 받으려면 1등을 해야 해. 1등을 하려면 적어도 만점 받을 각오로 해. 높은 학점과 지원 없이 스스로 번 돈. 그제야 무기력했던 나 자신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성취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어쩌면 성취는 내게 있어 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무기력했던 그때가 싫었다.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나 자신의 능력을 계속 확인하려고 애썼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으며 몸살 기운을 버텨내는 것도, 매일 강의실 의자를 붙여 쪽잠 자듯이 수면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치 않았다. 내게 있어 중요한 것은 쓸모없던 과거의 나를 버리는 과정이었으니까. 어때? 이제 나는 좀 멀쩡한 사람 같아? 긴장감과 고양감에 불면증은 더욱 심각해져 갔다. 즐거움, 들뜬 기분, 행복. 이런 것들이 없었다. 조증이면 당연히 즐겁거나 들떠있을 것이라 여겼다. 실제로 스무 살엔 즐거우면서 그 감정이 벅차 혼란스러워했으니까 다시 조증이 온다면 그런 식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워커홀릭도 조증의 증상일 것이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다. 격양감과 긴장감이 온몸을 쓸어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육이 경직되는 느낌을 받을 때면 묘하게 기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노력하는 사람이었고, 이 일련의 증상들이 내 노력의 증표처럼 느껴졌으니까.


 쓰러질 뻔했다. 뻔하지 않은가. 학교도 빠진 채 침대에 누워 애인과 천천히 대화했다. 아르바이트하고서 학교에 가면 자연스레 밥 먹는 시간이 생략되곤 했다. 그건 수면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일정이 끝나면 11시였고, 간단하게 뭐라도 먹으면 12시였다. 자정이 지난 시간부터는 과제를 하기 바빴고, 7시에 일어나 1시간 반의 출퇴근을 각오하고 일했다. 내 일정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누구도 나를 말려주지 못했다.


 하지만 1등을 하면 기분이 좋은걸.


 엄마, 이번에도 과탑을 했어요! 등록금이 0원이에요!


 엄마가 뭐라고 했더라. 그래,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겐 당연한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무시했다. 다른 이의 조언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공부하고 일했다. 가끔 다이어트를 하면서 출퇴근 시간엔 교수님의 강의 녹음을 들었다. 어떤 날에는 영어단어를 외웠다. 아르바이트를 줄이자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가만히 있으면 어쩐지 온몸이 떨리는 불안감에 한시도 얌전히 있기가 어려웠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새어 나가는 에너지를 막지 못해 지쳐가는 와중에 폭발한 것은 또 애인이었다. 억지로 끌려간 병원에서 의사 앞에 앉힌 채 나는 내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야기를 요약해서 알려야 했다.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내 인생의 그래프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번아웃이 아니라 조울증이시네요. 약이 시급합니다. 조증의 시기가 지나 우울의 시기가 오고 있어서 괜히 더 힘들게 느껴지는 거예요.


 나는 힘들지 않았다. 학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이다.


 밑줄. 밑줄. 별표. 밑줄. 동그라미. 밑줄. 별표. 밑줄


 밑줄. 밑줄. 밑줄.


 교수님 말은 들으면서 왜 의사 선생님 말은 듣지 않았지?


 강의를 듣고 있는데 멍한 기분이 들었다. 늘 코끝이 화끈거렸고, 온몸에 열기가 도는 기분이었다. 목이나 어깨 주변의 근육이 자주 뭉쳤다. 긴장 상태로 매일 하루를 보냈다. 일을 조금 쉬기로 했고, 여태까지 해왔던 근로 장학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학교 공부만 하는 생활은 어쩐지 여유로웠으나 기분이 뭔가 편안하지 않았다. 무언가 놓친 기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것들이 나를 지나쳐가는 기분이었다. 부족한데 무엇이 부족한지도 모른 채 나는 계속 갈증만 느꼈다.


 졸업을 앞둔 그때 애인이 워킹홀리데이를 제안했다. 며칠 동안 가지 말아 달라고 애인을 설득했으나 애인은 워킹홀리데이를 가면 그동안 영어 공부랑 돈을 벌 수 있다고 되려 나를 설득하려 했다. 너는 생존형 타입이니까. 오히려 영어권 국가에 가면 살려고 영어가 빨리 늘지 않을까? 사실 그런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애인이 없으면 내 곁엔 아무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애인 탓이 아니었다. 갈망을 느낀 시점에 딱 알맞은 게 찾아왔을 뿐이다. 마지막 학기엔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다. 대신 거기에 영어를 구겨 넣었다. 적당한 학점과 생활비, 그리고 영어 공부. 온몸이 화끈거릴 지경이었지만 나는 또 무시했다. 뭐가 중요할까. 내가 내 능력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축복이 아닐까? 힘들어도 버텨야 해. 나는 원래 그렇게 사는 애였으니까.


 왜 그때는 알지 못했을까. 애인도 정신이 아파서 도망친 워킹홀리데이였는데.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애써 외면했다. 그게 애인의 도피인 것을 어렴풋이 알았지만 혼자가 될 것이 두려웠다. 실패의 요인은 단순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라도 버텼다는 것이다. 낯선 나라의 이사 집 청소를 하면서 간신히 돈을 벌었다. 애인이 워낙 가져간 돈이 많아 걱정은 하지 않았으나 애인의 정신건강이 무너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애인에게 여태까지의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나는 버텨야 했다. 최대한 괜찮은 척했다. 3-400만 원 정도의 돈을 날렸지만 괜찮았다. 나는 일하는데 넌 왜 못하냐는 소리가 나올 듯 말 듯 했으나 애써 삼켜냈다. 낯선 나라가 무서워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원망의 말이 나올까 봐 꺼내지도 않았다. 낯선 나라에서의 나는 잘 버텨냈으나 본가로 돌아간 나는 이상하게 버틸 수 없었다.


 워킹홀리데이 실패로 애인은 본가로 돌아가 버렸다.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쥐어짜 낸 에너지가 고갈된 나는 다시 서울에서 홀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뭘 바랐던 걸까. 그렇게 가게 된 곳이 본가였는데 잘못된 생각이었다. 눈을 뜨면 독서실로 몸을 숨기듯이 나가야 했고, 저녁에 돌아오면 엄마에게 아르바이트 독촉을 들어야 했다. 지난 몇 년간이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으나 그런 말은 힘든 우리 집 사정상 참아내야 하는 말들이었다. 참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아빠는 선을 그었다. 너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 아빠는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그날에 수없이 반복해서 말했다. 더 이상 빌붙지 말라는 말을 부모님답게 바꾼 말이었다.


 가족을 떠나 애인한테 도망쳤다.


 애인이 사는 낯선 지방으로 도망쳤다.


 또 낯선.


 여기마저 나를 환영해주지 않았다. 내가 있을 곳은 없었다. 가난한 나는,  노력해서 살아야 하는데 아무도 내게 노력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전화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네가  노력한  아니야?’라는 목소리가 딸려오는  같았다. 그럴 때마다 우리 엄마는 그런 말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독촉인 것은 부정할  없는 사실이었다. 왜일까. 엄마는 동생의 텃세로 쫓겨난 내가 불쌍하지 않은 걸까? 내가 스무   알아서 벌어야 한다고 바로 아르바이트시켜놓고 동생은 여리다는 이유로 스물세 살까지 용돈을 받지? 쟤가 백화점 브랜드를  동안 나는 속옷   제대로 사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내가 불쌍하지도 않을까?  우리 가족은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지?  알고 있으면서.


 답은 간단했다. 나를 덜 사랑해서겠지. 사랑하지 않아서라고는 하지 않겠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부모님을 위해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나를 사랑했겠지.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인데 그럼 나를 왜 가엽게 여기지 않았나요. 내가 아무리 제 할 일도 못한 채 대학도 늦게 가고, 취업도 못 하는 얼간이라고 해도 나이에 비해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잖아요.


 쓸모없는 말이었다. 다 쓸모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렇게 날 사랑한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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