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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막 Aug 05. 2022

EP01 믿지 못하는 밤

 새소리가 무서워졌다.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를 들을 때마다 매일 수렵 자격증이라도 따야 하나 고민했다. 불투명한 유리를 통과해 베개로 내리쬐는 햇빛을 볼 때면 머리가 멈춘 것 같았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몸을 일으켜 짐을 싸 학교에 갈 뿐이었다. 학교에 간다한들 제대로 집중이 되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감기는 눈을 이기지 못해 날카로운 볼펜 심이 교과서의 중심부터 모서리까지 쭉 그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날에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교과서에 얼굴을 박은 채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았다. 깨워봤자 얼마 안 가서 다시 잠들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눈이 떠졌고, 아픈 목을 매만지다 짐을 싸고 집에 돌아가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내게 하루는 그런 것이었다. 내게 학교는 그런 것이었다. 내게 미성년이란 그런 것이었다. 도망치고 싶었으나 도망칠 곳이 없었다. 가지고 싶었으나 무엇도 가질 수 없는 나이였다. 꿈조차 나를 받아주지 않은 채 추방시켰다. 그게 불면증에 대한 내 첫 기억이었다.


 어디에도 있을 곳이 없는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온몸이 경직되는 느낌에 베개에 얼굴을 박았다. 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밖의 소리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그럴 때면 늘 밀림 속에서 불침번을 하고 있는 나를 떠올렸다. 아무도 없는 나무 밑에서 홀로 졸면서 밤을 버티는 내 모습이 상상하고 싶지 않아도 자동으로 떠올랐다. 어느 날은 별 탈 없이 흘러갔지만 어느 날은 조용히 흘러가는 날이 없었다. 아빠의 고함소리, 엄마의 토악질 소리, 누군지 모를 울음소리, 갑자기 들려오는 파열음 소리. 뭐 하나 얌전한 게 없었다. 꼭 그런 게 아니라도 나는 잠들지 못했다. 내일이 오는 게 무서웠고, 날이 밝다 한들 별로 기대되지 않았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내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불면증이 오면서 무너진 것인지, 무너졌기 때문에 불면증이 온 건지 구분도 가지 않았다. 그저 생각할 뿐이었다. 만약 내가 어른이었다면 여기서 탈출할 수 있을까. 무기력한 채 하루를 보내고 있자면 이따금 죽고 싶었다.


 잠들지 못한 날들이 이어지자 어느 순간 잠드는 것 자체를 포기했다. 밤이 되면 음성 채팅에 들어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잠들지 못한 이들이 하나둘 모이자 ‘새벽반’이라는 모임까지 생겼다. 거기에는 나와 같이 불면증에 시달리는 친구도 있었고, 야간 아르바이트 때문에 밤을 새우는 오빠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홀로 밤을 보내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홀로 남겨진 밤에 있다 보면 세상에 나만 남겨진 기분이 들어 버틸 수가 없었다. 끝없는 고통에 몸을 웅크린 채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애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그 애들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종종 했다. 우리의 대화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냥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걔는 어떻고, 쟤는 어떻고, 아 밤에는 심심해서 할 게 없다. 이 정도의 무의미한 대화뿐이었다. 그럼에도 괜찮았다. 잠들지 못 한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안심이 있었으니까.


 아무리 늦게 자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새벽 2시를 넘기면 다들 침대로 돌아갔다. 새벽반에서 끝까지 침대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나와 태호뿐이었다. 우리는 졸면서도 잠드는 게 무서워서 없는 말도 끌어와 대화를 나누었고, 침묵이 감돌 때면 그냥 가만히 있었다. 태호는 눈치가 참 빨랐다. 내 상태를 나보다 빨리 알아챘고, 선을 그어도 항상 그 선을 넘어서 들어오려고 했다. 친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워낙 선을 좋아하던 애라 이런 친구 관계는 처음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못 이긴 척 말하고 싶었던 사실들에 대해 떠들어대었다. 눈물이 터질 것 같은 날에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럼 태호는 기다려줬다. 위로가 잘 안되는 날에는 그냥 같이 밤을 새워줬다. 그러다 우는 날에는 태호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뿐이었지만 그런 밤은 외롭지 않았다.


 당시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할 정도로 불면증이 심각했으나 나는 병원에 가지 못했다. 정신병원이란 인식이 아무래도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빠의 반응이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무서웠다. 초등학생 때 애들 관리 차원에서 나눠준 설문지에 솔직하게 대답했다가 우울증 위험이 나왔다. 그 소식을 들은 아빠는 피자를 먹다가 피자 판으로 내 머리를 후려쳤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계속 머리를 두들겨 맞아야 했다. 아빠는 네가 문제가 있어서 맞는 거라고 했다. 문제가 있는 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들켜서는 안 되니까 나의 문제를 숨겨야 했다. 그러니 내가 불면증이란 것을 아빠에게만 들키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게임 중독인 척했다. 적어도 게임을 하다 밤을 새우는 것은 못된 아이일 뿐, 정신병을 가진 아이는 아니니까 괜찮았다. 그러다 곪아 죽더라도 지금만 문제 없으면 다 괜찮을 것 같았다.


 이런 날들이 금방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내 불면증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열일곱에서 열아홉까지 이어지자 수면유도제를 사기 시작했다. 몇 년째 이어지자 진짜 죽을 맛이었다. 수면유도제는 별 효과는 없었지만 안심이라도 주는 무언가가 있어서 매일 한 알씩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좀 더 잘 숨기지 못했을까. 좀 더 은밀한 곳에 숨겼어야 했는데 제대로 숨기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이런 일로 엄마가 충격을 받을지 몰랐다. 수면유도제를 본 엄마는 내가 무슨 자살 시도라도 한 것처럼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죄책감에 둘러싸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 채 무작정 엄마를 위로했다. 엄마,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잠이 잘 안 와서 먹었어요. 수면유도제랑 수면제랑 달라요.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에요. 그쯤에서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정신적으로 아프면 우리 가족은 나를 내칠까. 아니라고 바로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수면유도제를 먹지 않았다. 나의 밤은 너무나도 길었고, 낮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내 방이 전부였고, 내가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도 새벽반 애들밖에 없었다. 내 세계가 점점 좁아져 가다 못해 내 목을 옥죄었다.


 들켜서는 안 돼. 그럼 나는 정신병자가 되는 거야.


 차라리 정신병자가 되는 게 낫겠다.


 그럼 버려지겠지?


 좋으려나.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 학교에 가지 못했다. 어차피 학교에 가봤자 잠으로 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자퇴를 하고 싶다고 말하니 엄마가 울면서 바닥을 쳤다. 나는 또 나쁜 딸이 되었다. 나쁜 딸이 될 수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공부를 해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자고 싶었다. 일주일 동안 12시간밖에 자지 못하니까 슬슬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시야가 흔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나쁜 딸이 될 수 없으니 얌전히 자는 척을 했다. 잠들지 못한 것을 걸리는 날에는 아빠한테 맞았다. 이 밤에 뭘 하는 거냐고. 그만 좀 놀라고. 노는 게 그렇게 즐겁냐고. 즐겁진 않지만 즐거워서 노는 척을 해야 했다. 아빠가 그렇게 싫어하는 정신병자보다야 정신 못 차리는 학생이 낫겠지. 그럼 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 날에는 새소리가 그렇게 싫었다. 모두가 일어나는데 나만 잠들지 못했다. 그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견디기 힘든 날에는 베란다를 내려다보았다. 자동차의 등을 보면서 그게 침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다시 나쁜 딸이 될 수는 없었다.


 불면증에 걸린 나는 나쁜 딸이겠지. 혼자 있기 싫다. 누구든 나를 구해줬으면 좋겠다. 없겠지. 밤은 너무 외롭고 나는 점점 숨이 막히기 시작한다. 그러면 아빠는 좋아하실까. 차라리 그편이 낫다고 생각하시려나. 나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엇도 할 수 없다. 맞고 싶지 않으니 그냥 가만히 있는다. 가만히 있다가 뭘 해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나.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잠드는 척 연기를 할 때면 나는 또다시 죽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정상인처럼 자는 척 시늉을 한다. 누구 좋으라고? 아버지 보기에 좋으시다면야 해야지. 엄마의 눈물을 보기 싫으면 어떻게든 해야지. 모두가 잠들 시간이 되면 나는 조용히 일어나 노트북을 켠다. 음성 채팅에 들어가 조용히 눈물을 떨어뜨린다. 그래도 아무도 모른다. 내 얼굴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울고 있고, 아이들은 대화를 나눈다. 대화가 가득한 곳에 울다 보면 그나마 낫다. 내 울음소리를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다. 닿지 못할 바엔 삼키는 게 낫다. 아이들이 하나둘 떠나면 나는 다시 컴퓨터를 닫고 이불에 몸을 눕힌다.


 아빠 정말로 정신병자인 딸은 필요 없는 거죠? 나는 그럼 또 생각해야 한다. 불면증은 정신병이 아니다. 이건 그냥 일시적인 거고, 사춘기일 뿐이다. 내가 너무 늦게 자기 시작해서 천천히 주야가 바뀐 것뿐이다. 남들과 밤이 다를 뿐이다. 남들과 낮이 다를 뿐이다. 그러니 괜찮을 것이다. 그래. 난 괜찮을 것이다. 괜찮지 않으면 내가 어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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