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반엔 아픈 아이가 많았다. 우리는 새벽 감성이란 이름을 빌려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했고, 가끔은 별것도 아닌 일처럼 여기며 웃음으로 모든 것을 넘길 때도 많았다. 웃음. 우리는 서로의 아픈 부분을 건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웃음으로 넘기자. 그냥 듣고 넘기자. 그건 우리끼리의 불문율이나 다름없었다. 말을 하고 싶을 때가 많았으나 할 수가 없었다. 내 말을 하고 싶은 날에는 잠시 입을 열었다가도 아빠가 생각나 그대로 닫아버렸다. 아빠는 종종 말했다. 집안 얘기를 밖에서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의 말이 개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을 할 때면 아빠의 말이 떠올랐다. 모두가 잠든 새벽. 나는 그렇게 많은 기회를 웃음으로 넘겼다. 웃어야지. 나는 웃어야 했다. 웃어야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 것이라 생각했다. 모두가 밝은 나를 좋아할 것이라 여겼다.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렇다고 자꾸만 되뇌었다. 매번 사람들과 있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은 나였음을 그때는 몰랐다.
주기적으로 사람들한테 선을 그었다. 의식적으로 내 이야기를 피하며 누군가와 가까워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한 발자국 뒤에 서야 안전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태호는 내게 묻는 걸 멈추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벽을 치고, 그냥 웃는 얼굴로 대해도 태호는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미웠다. 좋았다. 원망스러웠다. 고마웠다. 알 수 없었다. 넘실거리는 나의 우울이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제발 누군가 내 선을 뛰어넘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틈 사이로 나오는 우울을 건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조차 다른 이의 우울을 못 본 척 넘기는 주제에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고 있었다. 가끔 태호에게 묻고 싶은 날들이 많았다. 너는 왜 선을 넘어와 내 우울을 마주했니.
새벽이 되면 우리는 또다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있잖아, 로 시작되는 말들. 아빠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아빠가 내 목을 졸랐어. 역시 내가 죽길 바라나 봐. 태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내 그냥 별거 아닌 것처럼 웃었다. 우리는 그런 식이었다. 진지해지는 게 무서워서 많은 것들을 웃음으로 흘려보냈다. 내 안의 우울을 웃음으로 흘려보낼 때면 정말로 슬프지 않은 것만 같아서 차라리 나았다. 집안이 엉망으로 망가진 날에는 공원으로 나가 무턱대고 전화를 걸었다. 내가 메신저를 탈퇴하거나 새벽반에 오지 않는 날에는 태호가 날 찾아주었다. 그런 날에는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날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어쩐지 혼자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살 수 있었다. 혼자가 아니란 그 사실만으로도 나의 새벽은 쭉 이어질 수 있었다.
점점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자연스레 만나는 횟수가 늘어났다. 학교도 가지 않은 채 나는 태호를 만나러 갔다. 우리는 만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페에 가만히 앉아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나도, 태호도 혼자가 싫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혼자였고, 서로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주어야 할지 몰라 침묵으로 하루를 보냈다. 나는 이따금 태호에게 건네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말은 많았으나 입을 열 줄 몰라 속으로 삼키게 된 말만 얼마나 되는지 샐 수도 없었다. 그런 날이 길어질수록 괜스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밤에 놀이터에 앉아 멍하니 놀이터 밖을 구경했다. 집에 들어가지 않은 채 끝없는 밤을 보내며 아침을 기다렸다. 추위를 견디며 웃음으로 모든 것을 흘려내려 보냈다. 왜 우리는 그래야 할까.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다. 저기요, 저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아빠에게 묻고 싶었다. 아빠, 나는 왜 이렇게 밤을 보내야 할까요. 태호에게 묻고 싶었다. 우리는 왜.
울지 못하는 날엔 스무살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나의 미성년이 너무나도 아팠기에 제발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열 아홉과 스물의 경계는 별 거 없다고 다들 말하지만 내게 있어 의미가 컸다. 스무 살엔 집을 나올 수 있잖아. 적어도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잖아. 작은 고시텔이라도 괜찮았다. 제발 집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 좋을 것 같았다.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았다. 조금씩 시세를 알아보며 떠날 날만 기다렸다. 그렇게 떠나는 날 엄마는 떠나지 말라고 울었으나 나는 그저 엄마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왜죠. 그렇게 내가 이 집에 있길 원했는데 왜 날 보호해주지 않았죠.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나는 또 하지 못했다. 떠나는 마당에 엄마한테 상처까지 줄 순 없었다. 아르바이트로 모아온 돈으로 고시텔로 떠났다. 어디를 가야할까.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었다. 태호와 떠들었던 그곳으로 가야지. 나의 침묵과 나의 울음이 가득 담긴 그곳으로 짐을 싸고 떠났다. 고시텔은 너무나 좁고 더러웠지만 괜찮았다. 엄마는 이런 고시텔에서 어떻게 살겠다고, 금방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엄마의 예상과 다르게 나는 고시텔이 좋았다. 아니, 그냥 집이 싫었다.
혼자가 되는 게 싫었다. 혼자가 되고 싶었다. 안전한 공간은 외로웠고, 모두가 있는 공간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실은 알고 있었다. 내가 어디에도 있을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을. 아르바이트는 쉽게 구해지지 않았고, 옆방에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나를 때릴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불안감에 입술을 물어뜯었다. 집을 나오면 불면증이고 뭐고 다 해결될 것이라고 느꼈다. 더럽게 화끈거리는 속을 달랠 수 있는 것이 독립이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밤이 되면 뜨거워진 속에 홀로 가슴께를 문질렀다. 뭘까. 뭔지도 모른 채 이불을 쥐어뜯었다. 뜨겁고 열이 오르는 감각에 기도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나중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화병이란 것을.
아빠 듣고 있나요? 별것도 아닌 걸로 힘들어하는 내가 화병이래요!
정말 웃기죠?
나는 아빠가 웃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나를 보고 웃었으면 좋겠어요. 아픈 나를 보고 웃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우울증 위험이 뜬 날에는 나를 때렸죠. 그렇다면 화병인 나는 어떻게 할 건가요?
가끔 아빠를 만나는 날에는 웃었다. 내가 아빠에게 보여줄 표정은 이것밖에 없었다. 그건 엄마도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가족들은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태호를 만나는 날에 이상하게 대화가 되지 않았다. 야, 나 이상해. 속이 화끈거려. 식도인지 기도인지 폐인지 심장인지 모를 것이 다 타버릴 것만 같아. 하지만 말하지 못했다. 말을 하려는 날에는 이상하게 속이 아팠다. 가슴께를 두들기다 다시 고시텔로 돌아가 버리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스무 살이 되면 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여겼다. 이불을 잡고 울면서 밤을 보내는 날이 없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여기엔 아빠도 없는데 왜 자꾸 나는 아픈 걸까요. 그때 입시를 봐주던 과외쌤이 내게 말했다. 병원에 가자. 너는 지금 정신과에 가야 해. 처음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게 뭐 별거라고. 다들 이러고 사는데 내가 이러는 건 너무 유난이 아닐까. 안 가겠다고 안 간다고 말하는 내 말을 듣고도 과외쌤은 나를 병원으로 이끌었다. 너는 지금 아픈 거야. 아픈 너를 똑바로 인지해야 해. 그래야 네가 너를 지킬 수 있지. 말하지 못했다. 선생님, 사실 저는 저를 지킬 생각이 없어요. 그냥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어요. 그 말을 하지 못해서 병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내 앞에 내밀어진 무수히 많은 질문들을 마주하며 나는 하나하나 동그라미를 그리며 표시했다. 그리고 결과가 나왔다. 양극성 정동 장애 2형, 즉 조울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