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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막 Oct 28. 2022

[07] 이게 다 시곗바늘이 길어서야


 이젠 좀 쉬라는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뭘 어떻게 쉬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그때는 두 번째 번아웃 이후로 일을 구했다가 코로나로 잘려 실업급여를 받고 있을 때였고, 무기력함이 온몸을 눌러 슬슬 죽을 거 같단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나는 이미 쉬고 있는데 어떻게 쉬죠. 그런데도 모두 나를 보면 쉬라고 말했다. 너는 쉴 필요가 있다고. 어떻게? 다들 나를 두고 놀리는 것 같았다. 쉬라면서 쉬는 법도 안 가르쳐주고 내가 하는 것들을 전부 그만두라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도 일단 말은 잘 들었다. 집안에서 쉬었다. 할 게 없어서 웹소설이나 웹툰을 보다가 금방 질려버렸다. 밖을 나가려고 했는데 연고지 없는 지방이라 친구가 없었다. 코로나임에도 여행을 갔다 왔는데 별 재미가 없었다. 뭘 해도 똑같았다. 프랑스 자수를 했다. 나름 잘했다. 굿노트 다이어리를 만들었다. 그냥 그랬다. 홈카페를 했다. 보기에 예뻤다. 영화를 봤다. 가끔 재미있었고, 가끔 재미없었다. 카페 투어를 갔다. 이건 좀 재미있었지만 얼마 안 가 가던 곳만 가게 되었다. 이것저것 먹어보았다. 먹고 나면 잊었다. 나 좋아하는 게 있긴 했나? 사람들과 얘기하면 좀 나을 것 같아서 온종일 줌을 켜 둔 채 이야기를 나누었다. 줌을 끄고 나니 허무함이 밀려왔다.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본 것 같다. 힐링이 유행일 때였고, 힐링 리스트까지 만들어보았다. 근데 나 뭐 하는 걸까. 공시 공부나 다시 하려고 했는데 다들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는 서서히 말라죽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째깍째깍. 시간이 흘러 하루라도 빨리 정신이 건강해지길 기다리고, 지루한 시간이 지나면 건강해질 것이라 믿고, 나는 언제쯤 건강해질까, 언제쯤 몸이 휴식을 다 취했다고 생각하려나, 하고 지켜보니 전혀 쉬는 게 아니었다. 시간만 하염없이 보내고 있을 뿐, 여전히 우울했고, 사는 게 지쳤다.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응. 행복을 바라 왔지만 행복이 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느린 시간 속에서 나는 이게 내가 원하던 게 맞나 고민했다. 째각째각 소리가 들리는 게 싫어 집안에 시계를 두지 않았다. 자꾸만 초조해지고 시간이 흘러가는 게 느껴져 그게 또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럼 느린 시간 속에 있으면 괜찮을 거야.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안에 누워 꽤 오래 생각을 했다. 아무리 빛을 감추고 시계를 없애봐도 시간이 느껴진다고.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아팠다. 아픈 시간에 닿지 않으려면 또 힘차게 뛰어야 하는데 이제는 뛸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뛸 힘은 남아있었으나 또다시 엎어지는 게 두려웠다. 엎어지는 게 두려웠던 나는 뛰지도 멈추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자세로 자리를 지켰다. 느린 시간 속에서 나는 어떤 자세로 있어야 할지 몰라 고민했다.


 시간이 느껴지는 게 무서워 급하게 이사를 했다. 서울로 가면. 다시 서울로 가면 달라지지 않을까. 이것저것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이젠 행복해?


 확실히 내가 행복해 보였을 것 같다. 잦은 여행에 늘 즐겁게 홈파티를 하고 있으니 행복해야 할 것 같았다. 누구보다 즐겁게 놀고 있으니 나는 행복해야 했다.


 미안해. 전혀 행복하지 않아. 나는 여전히 뛰어야 할 것 같고, 멈춰있는 게 무섭고,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하나 매일 고민해. 행복하지 않을 때면 이상하게 미안한 감정들이 올라왔다. 행복해지기 위해 어린 나를 바쳤는데 야속하게도 내게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 나는 또 무감해졌고, 이게 뭘까 싶어질 정도로 둔해졌다. 아둔해진 걸까. 그런 걸 고민하기도 했다. 무언가를 두고 온 기분이 계속 들었다. 어린 내게는 있지만 지금의 내게는 없는 무언가를 어린 내게 쥐여주고 와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간절하지 않은 것을 보아하니 결국엔 쓸모없는 것 중 하나겠지 하고 넘겼다.


  그래서 나는 그만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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