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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막 Oct 27. 2022

[06] 보상은 버그, 버그, 버그

 인생에 버그라도 난 것 같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딜 가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던 나는 제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딱히 갈 수 있는 곳도 없었고, 그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았다. 경주가 끝난 뒤에 남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경기 중에는 들뜬 열기와 응원 소리가 있었는데 시합이 끝나고 내려온 지금은 정적이었다. 선수가 아니게 된 나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이제 졸업을 했으니 공시를 준비하려고 했지만 너무 많은 돈을 워킹홀리데이에 터트려버렸다. 엄마가 비상시에 쓰라고 준 카드를 썼다가 전화가 왔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하는데 나를 써줄 사람은 없었다. 이제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가지.


 억울함이 목구멍을 타게 했지만 아쉽게도 입안에서 재가 나오진 않았다. 온몸이 불타오를 듯 뜨거웠지만 안타깝게도 몸은 멀쩡했다. 살이 저리게 아파져 오는데 나는 멀쩡했다. 그러니 움직여야 했다. 워킹홀리데이에서 돌아오자 아빠는 그 말을 내게 반복적으로 말했다. 너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노력. 나는 그 노력이 기본값이었다. 강조해서, 세뇌라도 하듯이 되풀이되는 그 말을 들으면서 그냥 웃었다. 그거 말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빠는 더는 도움 요청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역시 힘들 때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가족의 진정한 뜻임이 분명하다. 엄마네도 다를 거 없었다. 조금이라도 엄마가 나를 불쌍히 여길 줄 알았다. 불쌍하다고는 했다. 낡아버린 거적때기 같은 걸 계속 입고 있는 나를, 스킨로션이 없어서 남의 샘플이나 쓰고 있는 나를 불쌍해하기는 했다. 집안에 내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원래부터 본가에서 살던 동생과의 싸움에서 내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는 싸움을 모른 척했다. 다행히 아예 도움을 못 받은 것은 아니었다. 오열을 하면서 더는 이 집에 못 있겠다고 말하자 엄마는 100만 원을 주며 나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게 내 노력의 대가인가? 노력의 끝엔 뭐가 있었지. 그토록 행복해지고 싶어서, 평균은 되고 싶어서 달려왔는데 내가 쥐고 있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머리를 건들었다. 애초에 노력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연고지 없는 지방은 서울보다 아르바이트 자리가 적었고, 하필 그 해는 최저임금이 갑자기 오르면서 아르바이트생들이 대거 잘리는 과도기였다. 비상용으로 받은 엄마 카드로 밥을 사 먹었고, 전화가 계속 왔고, 일은 구해지지 않았고, 이제는 방을 빼기 직전까지 가버렸다. 이게 노력의 대가였다.


 졸업과 짧은 워킹홀리데이를 시작으로 나는 천천히 무너졌다. 그동안 노력하고 있으니 나아질 것이라 굳게 믿은 탓일까. 배신감이 온몸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게 게임 미션 같은 것도 아니고, 당연히 노력한 만큼 결과가 안 나올 수도 있는 건데 믿기질 않았다. 그렇게 공부하고, 그렇게 일을 했는데, 잠도 줄여가면서 얻은 결과가 이거였다. 결국 나는 돈이 없었고, 내 곁에 있어 줄 가족도 없었을뿐더러 이제는 내 마음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분명히 슬펐는데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라 그냥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애인을 붙잡고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말을 할 수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나는 분명 슬픈데 점점 표정을 짓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게임만 붙잡았다. 그래도 게임 속의 나는 무언가를 하면 보상을 받았다. 보상을 받고 싶었다. 그러면 누구한테 가야 하는 걸까.


  두 번째 번아웃에서의 나는 보상만 원했다. 그만큼 절박했고, 노력했으니 분명 내게도 행복이 떨어질 것이라 굳게 믿었던 탓이었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노력이 필수지만 그렇다고 그 노력이 보상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그게 억울해서 하염없이 감정을 비어내느라 바빴다. 모든 감정을 다 버리고 싶었다. 서러움도 이 배신감 어린 분노도 마지막엔 가족에 대한 갈망도 전부 버려내는 데 모든 것을 소비했다. 이제 정말 텅 비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나는 살아있고, 살아있다면 무언가를 해야 했다. 지금 당장 죽지 않을 거면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했다. 그렇게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땐, 예전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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