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사막 Oct 27. 2022

[05] 나를 위해 잃어버린 밤

 집에 오면 같이 사는 애인이 항상 누워서 나를 반겼다. 오늘은 뭘 했냐는 질문에도 애인은 시무룩한 채 잘 대답을 못했다. 졸업을 앞둔 애인은 우울해하는 일이 많았다. 그 우울함을 나는 쉽게 물어보지 못했다. 나는 그랬다. 누군가 물어볼 때면 올바른 대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고, 어느 새부터인가 그게 또 힘들어져서 차라리 아무것도 물어보질 않길 빌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애인의 옆에 누워 말했다. 오늘은 뭘 할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거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내가 한 번 아파보았기에 아픈 널 다른 이들보다는 더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네가 온종일 누워있는 이유를 알아, 네가 게을러서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란 것을 내가 알아. 낮의 내가 너무 바빴기에 우리는 밤이 되어야 서로를 마주했다. 야식을 시켜 먹으며 떠들거나, 밤공기를 마시며 손을 잡고 산책을 하기도 했다. 애인은 내가 오는 밤을 좋아했다. 그럼 나는 또 그 밤이 좋아서 자지 않는 시간이 늘어났다.


 괜찮아. 자지 않아도 돼.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어.


 다크서클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현기증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도. 가끔가다 코피가 났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나지 않았던 코피가 이제 나타난 건 조금 신기했다. 굳건하고 책임감 있게. 나는 늘 그 말을 되뇌었다. 내가 원하던 ‘나’는 그런 모습이었고, 나는 좀 더 그 모습에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러니까 울어선 안 돼. 울음을 한 번이라도 터트렸다가 그때로 되돌아갈까 봐 무서웠다.


 아, 또 돈이 없었다. 돈을 버는데도 돈 나갈 일은 끊이지 않았다. 새로운 속옷을 사지 않은 지 얼마나 되었더라. 자꾸만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애인은 내게 말을 걸었다. 아빠한테 받은 용돈이 있는데 그걸로 책값을 내. 애인은 당연하단 듯이 우리 돈이란 식으로 굴었다. 지원 없이 대학을 다니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때마다 애인은 자신의 몫을 떼어서 내게 주웠다. 우리. 우리는 돈을 나누지 않았다. 결혼이라도 한 사람처럼 모든 것을 공유했다. 의도한 배려는 아니었지만 나는 거기에 입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이건 공유라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네가 날 도와주는 거지. 애인 덕분에 대학을 어떻게든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도 사는 게 힘든 거면 이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이제는 행복해질 때가 되지 않았어?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면 괜찮아질 거야. 취직을 해서 돈을 벌면 괜찮아질 거야. 다들 사는 대로 살 수 있을 거야. 근데 다들 힘들게 살고 있는 거면 나는 어떡해? 이게 평균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해. 그런 날에도 나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보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알지 않으려고 눈을 감아야 했다. 긴 밤이 지나갈 때까지 나는 온몸이 불안으로 칠해지는 걸 지켜만 보아야 했다. 


 내가 어떻게 되든 말든 시간은 지나갔고, 나는 무사히 4점 대의 학점을 받았고, 졸업을 했고, 돈과 영어를 얻어오자는 애인의 설득에 홀로 남기 싫어 같이 워킹홀리데이를 갔고, 그러다 애인의 우울증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집이 없어진 나는 갈 곳이 없고, 애인은 그렇게 본가로 끌려갔고, 혼자가 되었다.


 무엇을 위해 기다렸더라. 내가 기다린 건 이게 아니었는데. 집이 없어진 나는 본가로 갔다가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쫓겨나다시피 낯선 지방으로 애인을 찾아 떠났다. 애인을 만났다. 애인을 만나면 다시 즐거웠던 그날의 밤처럼 몽글몽글할 것 같았는데 그냥 지쳐버렸다. 이제는 나를 깨우는 애인의 손길마저 짜증이 났다. 아무도 나를 깨우지 말아 주었으면. 


 

이전 05화 [04] 열감을 끌어안아야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