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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막 Oct 24. 2022

[03] 굴레의 시작점엔 다시 집

 전처럼 무리하지 않고 파트파이머로 짧게 일을 시작했다. 다행히 절박함에 구구절절 쓴 지원서가 사장님 눈에는 예의 바르고 성실한 학생으로 보였다고 했다. 오히려 시간을 줄이니 그전처럼 아르바이트에 매몰된 느낌이 덜어졌다. 그러니 나는 이제 제 자리를 찾아간 것이라 믿었다. 다시 일을 시작했고,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나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무기력했고, 일어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늦은 저녁에 눈을 뜨면 다시 감아버리고 싶은 날은 늘 그랬듯이 항상 내 옆에 있어 주었다. 고작 3시간. 나는 그 고작 3시간 버티는 것들이 너무나 힘들었다. 가만히 가게 안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카운터 밑으로 고개를 숙여 눈물을 떨어뜨리는 데 온힘을 쏟기에 바빴다. 모두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애인마저 지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꾀병이 아님에도 증명할 방법이 없는 나는 입을 달싹일 뿐이었다. 분명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던 나였는데, 어느 순간 기면증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날들로 달력을 가득 채웠다. 이미 다 소진되어 버린 거지. 다시 방전. 잦은 지각에 아르바이트에서 잘렸다.


 정말 우습게도 그와 동시에 대학 합격 문자가 날아왔다. 내가 우울한 것과 별개로 대학은 가야 했다. 응, 그래 내 마음과는 별개로. 애인의 설득에 결국 아무 곳이나 넣은 원서가 나를 살린 꼴이었다. 원하는 과는 아니었지만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대학. 대학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학을 다님으로써 얻을 수 있는 학자금 대출. 그게 내 눈에 들어온 전부였다. 은행에 가서 몇백만 원 대출을 받았다. 도저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에 다닐 용기가 없어 첫 일 년은 그냥 공부만 하기로 했다. 그렇게 큰돈이 내 통장에 들어왔다. 나는 멍하니 핸드폰 화면 위에 써진 글자를 보다가 끝내 눈을 감았다. 한숨이 터져 나왔다. 당분간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사실만이 내게 안도감을 주었다. 고작 몇 년 일했을 뿐인데 뭐가 그리 지친다고. 스스로를 혼내보았지만 쓸모는 없었다. 그저 울음 같은 중얼거림이 튀어나올 뿐이었다. 나도 드디어 내 나이에 맞게 있을 수 있겠구나. 남들처럼 학교 다니며 언제 아르바이트에서 전화 올지 몰라 대기조처럼 있지 않을 수 있다.


 이게 내 첫 번째 번아웃의 마무리 짓지 못한 결말. 이 모든 일이 돈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라 여겼다. 일부는 맞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나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챙기기 바빴고, 남의 곳을 얻어 입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다들 나를 가엾이 여긴 탓에 이것저것 받을 수 있어 그저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목이 졸리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몸을 갈아서 얻은 독립이 내 숨을 틀어쥐었다. 내 몸을 축내면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그 밑엔 넘실거리는 공포가 깔려있었다. 아빠는 끊임없이 내게 되새겼다. 여기는 내 집이라고. 쫓겨나고 싶냐고. 그러면 갈 곳이라도 있어? 반박하고 싶어도 전부 맞는 말이라 고개를 숙인 채 아빠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이 피어올랐다. 아빠가 나를 키우는 게 당연한가? 나,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거 아닐까.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그려졌다. 아빠가 돈을 끊어버리면 나는 갈 곳이 없다고.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버려지기 전에 혼자 살 힘을 찾아야 해. 어느 날 갑자기 쫓겨나기 전에 내가 있을 곳을 찾아야 해.


  돈을 모으면 더 이상 그런 기분 따위 느끼지 않을 거라 되뇌며 일을 했다. 통장에 잔고가 쌓이면 나는 더는 버려질 걱정 따위 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정작 나는 천천히 무너져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모두가 땅에 떨어진 내 조각들을 보고 내게 말을 걸었지만 당시 난 들리지 않는 척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천천히 부서지는 것 또한 나의 일이었다. 그렇게 무너져가기만 했을 뿐, 당시의 나는 나에 대해 돌아볼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한 번쯤 질문해볼 수 있는데, 그 질문조차 듣는 게 서러웠다. 왜 그렇게 무리해서 집을 나오려고 해. 좀 더 뭉개며 버틸 수도 있었잖아. 왜 그렇게 악착같이 일했을까. 시간이 지난 뒤에나 내게 물어볼 수 있었다. 나 정말 집 안에 있는 게 불안하고 무서웠구나. 당장 누군가에게 얻어터지거나 폭언을 듣는 것보다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나를 찔렀다. 그 뒤는 폭주 기관차나 다름없었다. 처음 얻은 성인의 힘에 기뻐 날뛰다 다 소비해버린 에너지에 어쩔 줄 모르는 아이와 같았다. 그러다 암전, 또다시 방전, 번아웃의 굴레.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탓이다. 당장의 상황만 해결되면 돼! 라는 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에 겪는 두 번째 번아웃에서 나는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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