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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막 Oct 21. 2022

[02] 첫 암전, 첫 번아웃

 이상하게 그다음 아르바이트로 넘어가는 게 망설여졌다.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괜스레 위축이 돼서 시선을 떨구는 일이 많아졌다. 손끝이 점점 둔해지고 있다는 게 다른 사람들 눈에도 보였다. 나는 자꾸만 무너져갔고, 무너져가는 조각들마저 타인에게 들키기 일쑤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얻은 갖은 비난과 성희롱이 내 몸에 점점 쌓여가는 것 같았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 사실에 울음이 터졌다. 마음을 다잡으려고 머리를 쥐어뜯어도 서러운 감정이 밀려 나왔다. 아무것도 못 하겠어. 이래선 아빠와 다를 게 없는데. 일을 해야 해. 민폐를 끼쳐서 안 돼. 내가 너무 불쌍했다. 집에 마음 붙일 수도 없어 스무 살에 밖을 나오게 된 내가 더없이 불쌍했다. 모아두었던 적금을 깼음에도 생활이 되지 않았다. 월세 날은 쉽게만 찾아왔고, 밥값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다. 전화를 걸었다. 긴 통화음을 견딜 수 없어 다 마신 맥주캔을 구기며 기다렸다. 아빠, 나 생활이 안 되는데 도와줄 수 있어요? 한참 뒤 들리는 건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 아빠의 실소였다. 당황스럽네. 그걸 왜 나한테 말하지?


 울 수도 화낼 수도 없다. 거절 또한 당연히 예상했다. 아빠가 도와줄 수도 있는 거고, 없을 수도 있는 거고. 아빠도 힘들 수도 있는 거고, 여유가 될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이건 전혀 상상하지 못했어. 그렇구나. 그냥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렇네요. 나중에 또 전화할게요, 아빠.


 아빠. 아빠라는 글자가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홀로 말없이 속삭였다. 아빠. 아빠.


 훗날 아빠가 당시 힘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나는 아빠를 이해하지도 되려 따지지도 않았다. 아빠와 나는 별개니까.


 자, 이제는 정말로 암전. 이게 내가 처음으로 겪은 번아웃. 처음 겪었던 만큼 극심하게 온 우울증에 나는 방 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심신이 망가져버렸다. 하루가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은 눅눅한 방안은 나랑 정말이지 잘 어울렸다.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는데, 쉽지 않았다. 늘 가볍게 넣었던 아르바이트 지원인데 이상하게 주저했다. 무서운 게 너무 많아졌다. 사장님이 무서웠다. 내 행동이, 내 말이 언제 책잡힐지 몰라서 힘들었다. 언제 또 갑자기 막말을 들을지 몰라 불안했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자신의 화를 내게 풀었다. 나는 그 밑의 존재니까. 그럼 돈 버는 게 쉬운 줄 알아? 스스로 그렇게 말해봤자 달라질 리가 없었다. 다시 무력해진 나는 결국 이불 밑에 가라앉아 버렸다.


  우습게도 가라앉은 나를 꺼내 올린 건 내 애인이었다. 가족들은 되려 도움 구할 생각하지 말라는 식으로 나오는데 애인은 내가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는 동안 나를 돌봐주었다. 일어나야지, 하고 내 어깨를 잡은 네 손을 기억한다. 웃고 떠들자고 애니메이션을 가져와 밤새 곁을 지켜주었던 네가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생활이 이루어질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애인은 자기만 믿으라며 대신 아르바이트까지 뛰었다. 내가 그토록 무서워하는 걸 너는 나를 지키기 위해 했다. 내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을 애인이 대신 가져가 버렸다. 엄마가 모두의 짐을 짊어진 것처럼. 그럼에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는 한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미안하게도 하루빨리 애인이 그만두고 나를 버리길 원했다. 가족도 아닌데. 애초 가족도 내가 어떤 생활을 보내는지 모르는데 너는 왜 애써 나를 돌봐줄까. 죄책감으로 가득한 하루는 이제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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