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사막 Oct 17. 2022

[00] 제 노력이 부족했나요?

 노력하면 행복해지나요? 네, 저는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었어요. 그래서 행복해졌나요? 아마 제 노력이 부족했던 탓 아닐까요. 더 노력하면 될 겁니다. 더. 더욱더. 더 노력하다 보면 행복해지는 올 거라 믿어요, 나는. 그래서 행복하시나요? 행복은 뭘까요. 이제는 모르겠어요. 관성만 남아버린 거죠. 나는 모르겠어요.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번아웃 수집가가 되어있었다. 자잘한 것까지 합치면 이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아르바이트만 하다가 푹, 대학 다니면서 일하다가 푹, 수험 생활하다가 가정사 터져서 푹. 크게만 3번째. 번아웃이 올 때마다 1년을 내리 푹 쉬었다. 인생에 공백이 이렇게 많아도 되는 걸까. 이미 사기업에 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다.


 있는 힘을 쥐어짜 내다보면 당연히 탈진할 때가 오지 않는가. 나는 몇 번의 탈진을 경험하고도 배운 게 없었다. 심지어 그 탈진감을 좋아하기까지 했다. 탈진이 즉, 노력 그 자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또 앓아누웠다. 이번엔 행복해질 것이라 믿었는데. 어쨌든 제가 할 수 있는 건 노력밖에 없잖아요. 그럼 노력을 해야겠지. 안 그럼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데. 공부를 했다. 돈을 벌었다. 성취감에 몸이 녹을 것같이 좋아서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주어진 일을 해냈다. 좋은 거잖아요.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그럼 우수해지는 거 아닐까요?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괜찮다. 나는 잘할 수 있다. 나는 해낼 수 있다. 이건 나쁜 게 아니잖아. 나는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잖아. 그럼 언젠가 보상이 따라올 거야.


 열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내 불안과 같았다. 온종일 코끝이, 이마가 뜨거웠다. 온종일 머리가 어질어질했고, 가만히 한 곳을 보고 있으면 시야가 흔들렸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는 걸, 싶을 때도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살다가 일이 마무리된다 싶을 때쯤이면 터졌다. 누워서, 열에 휩싸인 채로 하루를 보냈다. 어차피 다 마무리한 거. 인생이 그게 끝이 아닌데, 나는 그게 끝인 것처럼 살았다. 한 챕터를 마무리하면 다음 챕터에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데 나는 그 한 챕터만을 위해 살았다. 내게 남은 건 다 타버린 재밖에 없었다. 끝엔 항상 그 재만 부여잡고 누워있는 꼴이었다.


 너는 쉬어야 해, 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말을 들어봤자 곤란할 뿐이었다. 열심히 쉬어봤어. 아무것도 안 한 채 하루를 보내보기도 했고, 남들이 쉰다고 말하는 리스트도 다 해봤어. 그럼에도 나는 넘실거리는 불안에 휩싸인 채 하루하루 지쳐갔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곤 하지만 피곤해질 뿐이었다. 좋아한다고 생각해도 열심히 하다 보면 진이 빠졌다. 이딴 걸 이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어? 그맘때쯤 그런 소리를 들었다. ‘너는 쉴 줄 모르는 거 같아. 그냥 누워서 쉬어.’ 누워서. 나는 누워서 쉴 수 없었다. 하루가 생산적이지 않으면 그날 자는 게 무서웠고, 가만히 있다 보면 불안감에 잡아먹혀 시야가 좁아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말했다. 너는 쉬어야 해.


 하지만 쉬는 게 뭔지 모르는 저는 어떡하죠.


 이제는 정말 지쳐서 잠겨버리고 싶은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