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사막 Oct 19. 2022

[01] 스무살의 100만원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우리 집은 돈이 없으니까. 이제부터 네 용돈은 네가 벌라는 부모님의 말씀과 내야 하는 과외비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막 성인이 된 스무 살. 미성년자 때도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다만 좀 더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였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매몰되어 재수를 결심했음에도 나는 구인 공고를 보기 바빴다. 이리저리 이력서를 돌리고, 어른들 앞에 설 때면 억지로라도 웃어보이고, 면접에 통과하면 눈치를 보며 해야 할 일을 찾고. 전부 다 어색하고 낯선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해야 했다. 해야 했다.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월화수목 오후에는 PC방 아르바이트를, 주말에는 돌잔치 뷔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돌아다녔다. 어떻게든 돈을 모아야 해. 엄마가 열심히 일을 하잖아. 도움이 못 되더라도 앞가림을 내가 해야 해. 멈춰있는 것은 무서웠다. 방안에 고여버린 아빠가 무서웠다.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짐이 된다는 게 무서웠다. 매일같이 일을 하며 몸을 축내는 엄마가 언제 쓰러질지 몰라 무서웠다. 점점 말라가는 엄마의 손을 보고 있자면 모든 영양을 내가 다 빨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에 들어오면 끊임없는 죄책감과 원망에 숨이 막혔다. 일하지 않고 고이다 못해 썩어가는 아빠와 쉬지 않고 일하며 말라가는 엄마. 내가 짐이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아빠를 닮은 애잖아. 아빠의 미래가 내게도 이어지면 어떡하지. 나는 아빠와 달라야 해.


 시작은 초조함이었으나 처음 만져보는 큰돈은 괜스레 사람을 부추겼다. 첫 월급날. 예상했던 돈을 그대로 받았음에도 한동안 그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 돈이면 고시텔 비용과 생활비가 가능할 것 같은데. 혹시 나 독립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 집에 탈출하는 것도 허황된 말은 아니지 않을까. 스무 살. 스무 살이란 나이는 내게 많은 생각을 떠안겼다. 고작 80만 원(2014년 물가, 심지어 최저도 못 받았다.) 버는 게 다였음에도 흥분감에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건 내가 처음으로 얻은 힘이었다. 무력하고 약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성년자에서 자유롭게 돈을 벌 수 있는 성인이 됐다는 것은 내게 있어 첫 숨 트임이었다. 더 이상 돈으로 협박받거나,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의 고함이나 울음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다. 하루가 너무 빨리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잔고에 돈이 쌓일수록 나는 자유로워졌고,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 가령 독립 같은 것? 정말로 해버렸다. 집을 나왔다. 100만 원을 들고 고시텔에 들어갔다. 스무 살은 가히 최고였다. 돈을 벌어서 집을 나갈 수 있다니. 벗어날 수 있다니. 언제 집안이 엎어질지 몰라 불안감에 몸을 웅크리던 하루도 이젠 끝이었다. 역시 돈을 벌어야 해. 자유를 손에 쥐어야 해.


 돈 쓰는 게 아까워서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밥을 먹었다. 고기 뷔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 끼는 사이드로 나오는 떡볶이를 주워 먹으며 해결하고, 한 끼는 거기서 나오는 밥으로 해결하고.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에는 고시텔에서 주는 라면으로 빈속을 달랬다. 술은 친구들이랑 편의점에서 소주로, 옷이나 스킨로션은 남들이 준 거나 샘플로 대충. 아끼고 아낀 돈이 쌓여가면 내 인생의 점수도 높아져 가는 것 같았다. 그게 점수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다시 숨이 막혔다.


  재수 준비와 아르바이트. 공부와 일. 끊임없는 감정 노동들. 견뎌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일을 버텼다. 어차피 사는 건 힘들고 일을 때려치워도 똑같을 거라고. 지쳐가는 몸을 견디지 못하고 고기 뷔페에서 편의점으로 아르바이트를 바꿨다. 꽉 막힌 공간에서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자니 점점 눈이 건조해지고 온몸이 축축 처지는 것 같았다. 멍하니 있는 날이 많아졌다. 좁은 곳에 반나절을 보내는 건 너무 끔찍했다. 내 세상의 전부가 편의점인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이전 01화 [00] 제 노력이 부족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