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모르는 N수생, 그게 나였다. 사람들 눈에는 언제나 나를 향한 한심함이 비쳤다. 변명이라도 해야 하나 싶을 때가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 내 사정을 안다고 해서 그들이 말을 바꾸진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한심하고 철없는 애였다. 내가 얼마나 절박하게 살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눈앞에 던져진 몇 가지 단어들이 중요했다. N수생, 흙수저, 자취생. 단어들은 대학에 들어가자 쉽게 이름을 바꾸었다. 좋은 대학은 아니었지만 내 이름 앞에 다른 수식어를 붙이기엔 충분했다. 어느새 나는 교수님의 원픽이었고, 과탑이었고, 성실한 학생이 되었다. 글도 어느 정도 썼고, 파워포인트나 엑셀 같은 문서작업은 원래 즐기는 편이었으니 나는 점점 못하는 게 없는 애로 이름이 바뀌었다. 분명 나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뭔가 뒤집힌 느낌을 받았다. 아르바이트에서 성실함은 몇 마디 칭찬으로 끝나지만 대학에서의 성실함은 달랐다. 학점이 달랐고, 들어오는 장학금이 달랐다. 주변 사람의 인식이 뒤집혔고, 성적표에 적힌 학점이 나를 증명해주었다. 분명 나는 늘 노력해왔는데, 그때의 나를 칭찬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되려 생각 없는 철부지로 보았을 뿐.
조금 신이 났던 것 같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무작정 달렸다. 사람들의 칭찬이 좋았다. 예전엔 아무리 달려도 다들 나를 못 보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다들 날 봐주었다, 전공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성적 장학금을 받았다. 시험 기간이 되면 나는 바빠졌고, 그게 내 유능함이라 믿었다. 그러니까 나는 과탑을 해야 해.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레포트를 몇 번이나 뜯어고쳤다. 만점을 받고 싶다는 욕심에 노트 구석구석까지 달달 외우며 밤을 지새웠다. 다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사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성적 장학금을 못 받아도 우리 집은 가난하니까 국가장학금이 충분히 나올 테고, 학점을 잘 받아봤자 어차피 공시를 볼 거니까 사실상 쓸데없다. 그런데도 가급적이면 1등이 되고 싶었다. N수 생활동안 받아온 사람들의 말을 반박하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무능한 애가 아닌데. 그저 집안 사정 때문에, 내가 아팠기 때문에 남들보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뿐인데. 말을 할 사람은 없었다. 그저 나라도 내게 증명하기 위해 애썼던 시간이었다.
첫 1년이 지나고 일을 구했다. 대학 생활과 아르바이트. 대학을 다니고, 하루 7시간 일을 하고, 과제를 하느라 밤을 새우고. 자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상관없었다. 나중에 자면 돼. 쪽잠으로 해결하면 돼. 어느새 나는 내 건강을 등한시하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잖아요? 저는 결국 과탑을 했어요. 월에 140만 원 정도 벌었어요. 전부 다 예전의 빚을 갚기 위해서요. 끝이 나질 않아. 끝이 보이질 않아. 생활비를 빼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는데 그걸로 대출을 어떻게 갚지. 생각보다 쉬웠다. 체념하면 된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이라고. 나는 원래 이렇게 살았으니 그냥 이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다.
이 와중에 학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곳까지 1시간 반이 걸렸다. 그래도 괜찮았다. 근로장학이었고, 문헌정보학과니까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일하는 게 혹시나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남아있었다. 한 시간 반, 한 시간, 한 시간. 이동시간 세 시간 반, 하루에 강의 듣는 시간 약 다섯 시간, 일하는 시간 일곱 시간, 과제하는 시간 세 시간, 밥 먹는 시간 두 시간. 대충 이것저것 낭비한 시간 빼면 네다섯 시간 자겠네. 자는 시간은 안 챙겨도 돼? 그런 건 필요 없어. 잠은 죽어서 자면 돼. 그럼 언제쯤 죽을 수 있을까. 그런 건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일단 할 수 있는 걸 해야 해.
온종일 열감이 떨어지지 않았다. 몸을 제대로 못 가누고 시야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하단 것을 느꼈다. 지하철에서 손잡이만 부여잡은 채 잠시 고민했다. 택시를 타고 가야 하나? 택시비가 얼마인 줄 알고. 못해도 2-3만 원은 들 거야. 참자. 눈을 감고 버티면 나는 일터였고, 학교였고, 또 집이었다.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흐름에 맡기며 하루를 보냈다. 그럼 나는 벗어날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