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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May 14. 2022

브런치를 시작했다 허리 디스크 때문에

헛개잡상인, #12

아내가 잠시 운영했던 블로그에 글을 연재했던 적이 있다. 브런치란 플랫폼이 있는지도 몰랐을 때였다. 계기가 눈물 난다. 생명과도 같은 허리 디스크가 터지는 바람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 글쓰기밖에 없던 것이다. 답답한 마음을 글로 풀어내고 싶기도 했고, 나의 디스크 치유기를 공유하 다른 환자들에게 작게나마 도움도 되고 싶었다.


허리를 다친 과정은 더 눈물 난다. 돌이켜 보면 통증이 심하지 않았을 때 정형외과나 통증의학과로 곧장 갔어야 했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한의원. 허리가 씻은 듯이 나을 거라 기대가 되어 한 번 웃었고. 이제 추나요법도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는 말을 듣고 두 번 웃었다. 아, 이것이 바로 동양 의술과 금융 치료의 신비로운 조화.


엑스레이 촬영 후 한의사 선생님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추나요법을 실시했다. 선생님은 나의 허리를 이리저리 접고 꺾고 두들겼다. 그는 마치 조각가 같았고, 따지자면 나는 그의 예술 작품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도자기는 부수어 버린다는 도자기 명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망한 작품이었던 것일까? 그나마 제 기능을 유지하고 있던 디스크가 결국 무리한 치료 탓에 터져 버리고 말았다. 난 치료 이전보다 더욱 심하게 다리를 절며, 10분이면 도착할 집을 30분이나 걸려 돌아갔다.


절대 오해는 하지 마시길. 당시 내 증상에 추나요법이 맞지 않는 방법이었을 뿐, 한의학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어찌 됐건 난 결국 독한 마약성 진통제로도 잡히지 않는 통증 탓에 병원에서 시술을 받고 꼬박 2개월을 집에서 기어만 다녔다. 내 안의 글쓰기 본능은 이렇게 일깨워졌다. 어쩌면 가벼운 마음으로 디스크 치유기를 쓰기 시작한 게 브런치의 계기가 된 것이다.


좀 더 자세한 사정은 이렇다. 어느 날 아내에게 좀 씻겨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난 힘겹게 욕실까지 기어가 차가운 바닥에 엎드렸다. 나체인 탓에 다시 아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끄러움과 평화로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어휴, 다 큰 남편 목욕이나 시켜 주고 있고. 숭하다 숭해. 내 팔자야. 이쪽 팔도 들어.”

저기 말이야. 디스크 치유기는 이쯤 하고 우리 집 고양이 이야기나 한 번 써 볼까 싶어.”

뜬금없기는. 그러면 브런치에 써 보든가.”

브런치? 브런치가 뭐야?”


시간이 지나자 다시 운동도 할 수 있을 만큼 허리가 치유되었다. 마음속으로는 수십 번을 뜯어고쳤던 고양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마침내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머리를 쥐어뜯은 끝에 글 한 편이 나왔다. 고르고 고른 사진을 글 사이에 배치하니 나름 그럴싸했다. 아내의 반응이 내심 기대되었다.


재밌어.”


‘좋았어.’ 나의 첫 독자인 아내에게 작가명으로 ‘캣브로’는 어떠냐고 물었다.


좋은데?”


‘고양이 가족이 생기다’란 첫 브런치 글은 이렇게 탄생하였다.


그러니까 말이다. 난 정말 어이없게도 허리 디스크 때문에 글을 쓰게 된 셈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란 생각이 든다. 또 어디를 다쳐야 글을 열심히 쓰게 될까? 아니다. 또 아픈 건 생각도 하지 말자. 늘 나의 글을 처음으로 읽어 주는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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