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30대가 되면 자기 스타일이 생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요새 들어 부쩍 느낀다. 옷 입기부터 선호하는 음식이나 인간관계까지 자기만의 스타일이 생긴다. 에너지는 넘쳐도 어딘가 어설픈 20대 시절과 달리 중심이 잡힌다. 나무로 치면 잔가지가 떨어지고 기둥만 우뚝 서는 것과 같다. 물리적 반경은 줄어들지만 세계가 더욱 깊어지는 느낌이랄까.
30대의 스타일이라... 30대가 되면 생기는 이 무엇을 나는 어떤 다른 말도 아닌 스타일이라 부르고 싶다. ‘곤조’라기에는 비교적 유연하고, 철학이나 가치관이란 칭하기에는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스타일이란 건 비단 옷뿐만 아니라 선호하는 음식이나 인간관계 같은 것들까지 포괄하는 것이겠지만 이번은 옷 입기, 그러니까 패션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먼저 대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겠다. 당시 여자 친구였던 아내의 말에 따르면, 그때의 난 흡사 망나니와 같았다고 한다. 술에 절어 사는 일상도 그랬지만 아무렇게나 기른 장발과 좋게 말해 자유분방한(?) 패션은 더더욱. 말하자면 망나니의 지덕체를 모두 갖춘 셈이다.
차라리 일관성이라도 있으면 좋았을 것을. 쇄골까지 오는 장발은 레트로인데 어디서 샀는지도 모를 미래 지향적인 옷들이 아주 기괴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며 아내는 내 키가 아깝다고 했다. 난 아내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이게 바로 ‘니뽄 스타일’이라고 빡빡 우기며, 패션은 돌고 도는 것이니 언젠가는 내가 옳았음을 증명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이런, 멍청이. 엄마 말은 안 들어도 사랑하는 연인의 말은 들었어야 했다. 아내가 고른, 포인트 하나 없이 밋밋하기만 한 옷을 입자 나의 과한 머리와 얼굴이 중화되며(?) 포인트가 되었다. 퍼스널 컬러를 알게 되었고, 어떤 핏의 옷이 내 몸의 장점은 드러내고 단점은 가려주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패션은 굉장히 섬세하고 복잡한 분야였다. 느낌도 중요하지만 때로 공부가 필요했다.
쑥스럽지만 지금은 어디 가서 옷을 이상하게 입고 다닌다는 얘기는 듣지 않는다. 비로소 말할 수 있다. 이제 나만의 스타일이 생겼다. 나에게 맞는 옷을 보는 눈이 조금 뜨인 것이다. 색깔만 달리한 같은 옷도 몇 벌씩 되는 한편, 못 입을 옷은 과감하게 버릴 줄도 안다. 이를 미니멀리즘이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할 수 있는 배짱도 생겼다. 실은 출근 전 고민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이지만 말이다.
소재도 핏도 분위기도 다른 옷들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면서 조합하고 입어 보는 재미는 사라졌지만 여기에는 다른 재미가 있다. 미묘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것. 그리고 그런 나 자신에 대해 뿌듯함을 느끼는 것. 이를테면, 벨트와 신발의 색상 정도는 맞춘다거나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게 넥타이를 맬 수 있다거나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래도 아직 버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동경하던 선배 형들이 하고 다니던 일본 스타일 눈썹이다. 너무 촌스럽지 않도록 20대에 비해 각도는 많이 완만해졌지만, 여전히 나의 눈썹은 하늘을 향해 있다. 나는 오늘도 ‘간지’를 꿈꾸며 남성 잡지를 읽는다. 코트와 운동화 조합이 낯선 걸 보니 아직도 한참 먼 것 같기는 하다. '새내기 사원이 부담 없이 메기 좋은 ○○ 백팩(420만 원)'이라는 기사를 보고 조용히 페이지를 넘겨 버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