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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May 09. 2022

노부부와 리어카

헛개잡상인, #11

여느 날과 다름없는 출근길이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마을버스를 탔고, 무료함을 달래려 음악을 재생했다. 그날은 머리 스타일이 안 나와서 짜증이 조금 났던 것 같기도 하다. 버스는 평소보다 승객이 많았다.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짐스러운 만원 버스는 몇 년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두세 정거장쯤 지났을까, 차창 밖으로 리어카를 끄는 노부부가 보였다.


예사로운 일이다. 다만 리어카에 으레 있어야 할 폐지나 잡동사니는 보이지 않고, 대신 할아버지가 타고 있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말이다.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는 것도 빼야겠다. 힘들 법도 한데 할머니의 얼굴엔 짜증스러운 기색조차 묻어 있지 않았고, 리어카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의 얼굴엔 어린아이 같은 웃음이 가득했다.


‘무슨 상황일까? 할머니가 가위바위보를 지기라도 한 걸까? 할아버지가 거동이 불편하신 걸까?’ 까닭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청승인가 싶어 마른 공기만 꾹꾹 연거푸 삼켰다. 아무래도 좋다. 먹먹한 마음이 좀 진정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명이 밀고 한 명은 끌면 덜 힘들 텐데...’


빌어먹을, 아직 멀었다. 저 행복한 노부부의 얼굴을 보고도 난 생각이 여기까지밖에 미치지 못하는 놈이었구나. ‘아버지와 아들과 당나귀’ 우화가 떠올랐다. 난 이야기 속 오지랖을 부리던 마을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노부부를 봤을 승객들이 이들을 어리석다 욕하지 않기를 바라는 이 마음 자체가 위선이었다.


분명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짐스럽지 않았을 게다. 그리고 할아버지도 할머니에게 미안하지 않았을 게다. 어쩌면 한 정거장을 지나 여든을 바라보는 아내와 남편은 서로의 역할을 바꾸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만원 버스를 탈 때마다 아무렇지도 않게 옆 사람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이들은 오늘 하루도 열심히 각자의 일터로 향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버스가 급히 멈추어도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서로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어쩌면 버스 안 우리들도 노부부와 같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사라졌다. 내 옆의 타인이 누가 되었든 짐으로 여기지 말자고 다짐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심하게 지나쳤던 기사님의 인사와 만삭의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청년의 얼굴. 옆 사람이 떨어뜨린 스마트폰을 허리 굽혀 건네주는 아가씨와 실수로 발을 밟혀도 성내지 않았던 아저씨. 짐을 덜자 일상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노부부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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