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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May 21. 2022

눈빛이 마음에 드는군. 너, 내 집사가 되어라!

고양이 눈싸움, 눈으로 보는 고양이의 마음

4냥꾼 캣브로, 예순한 번째 이야기




이렇게 건방진 눈빛은 본 적이 없어


건방진 녀석, 한번 해 보겠다는 거야? 녀석이 큰 눈으로 나를 계속 빤히 쳐다본다. 공기 속에 긴장감이 맴돈다. 나도 눈을 피하지 않는다. 이상한 승부욕이 생긴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 녀석의 눈은 깜빡임조차 없는 반면 나의 눈은 점점 뻑뻑해진다. 강적을 만난 것 같다. 눈물이 맺힌다. 에라이, 그만하자. 고양이 눈싸움 이겨서 뭐 하냐.


츠동이가 집에 오고 초보 집사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두 수컷의 의미 없는 눈싸움은 결국 나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야속했다. 밥도 주고 화장실도 치워 주는 명색이 집사 아닌가. 존경심은 보이지 않더라도 나이도 더 많은 내게 그런 건방진 눈만은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건방진 녀석들. 건방진 눈빛과 달리 실은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이다.


오해였다. 고양이란 원래 이렇게 생겨 먹은 존재였다. 대개는 집사의 행동이 신기해서 빤히 쳐다보거나 아무 생각이 없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눈싸움을 걸면 불편한 분위기를 읽고 보통은 고양이가 먼저 눈길을 피하는 경우도 많다던데, 츠동이는 워낙 강성이었을 뿐이다.


고양이에게 강렬한 응시는 싸우자는 의미가 되기도 하므로 충분한 유대감이 없는 상태에서는 혹시라도 눈싸움을 거는 일은 하지 말자. 자비 없는 냥펀치를 맞고 외눈의 집사가 되는 수가 있다. 대신 지그시 바라보고 눈을 깜빡거리며 다정한 눈뽀뽀를 날려 주자, 이내 함께 눈을 깜빡거리며 애정을 표현하는 사랑스러운 냥이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던데


고양이의 눈을 보면 고양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상반된 감정인데도 얼핏 보기엔 눈의 모양은 같아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 고양이와 오래 지내면 전반적인 미묘한 표정 차이가 느껴지겠지만, 이제 서로 알아가는 중이라면 다른 신체 언어들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양이는 흥미로운 자극이 생기면 동공이 아주 커진다. 새로운 장난감을 본다거나, TV에서 처음 듣는 낯선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거나. 한편 큰소리가 나는 등 놀라거나 두려운 상태에서도 동공이 커지는 걸 볼 수 있는데, 고양이의 감정을 더욱 정확히 알기 위해 행동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이유이다.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겁먹었을 때는 뭔가 울상이 되는 느낌이 있다.


장난감을 본 루비, 다가가자 놀란 겁쟁이 구로. 둘 다 눈이 동그래졌지만 여기에는 집사들만 아는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다.


편안하고 안정된 기분을 느낄 때는 눈을 가늘게 뜬다. 이 상태에서 눈이 마주치면, 눈을 깜빡이며 눈뽀뽀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공격성을 드러낼 때도 마찬가지로 눈을 가늘게 뜨는 경우가 있으므로,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하악질을 하지는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안정감을 느낄 때가 졸린 듯한 표정에 가깝다면, 경계를 취할 때는 확실히 노려보는 느낌이 있다. 한 끗 차이다. 술에 취한 사람을 상상하면 쉽다. 술에 취해 긴장이 해소되고 마음이 열린 사람과 까닭 모를 화를 내며 시비를 걸려는 사람의 눈을 떠올려 보자. 온순한 양과 흉폭한 늑대는 한 잔 차이로 갈리는 법이다.


편안하다. 편안해.


냥이들에게 눈싸움을 걸어 볼까


가끔 북슬북슬한 이 털 뭉치 녀석들이 너무 좋아서 눈싸움을 걸어 본다. 마치 좋아하는 여자 짝꿍을 괴롭히는 소년의 마음과도 같다. 눈싸움 하나에도 4냥이들의 개성이 묻어 나오는 게 관전 포인트다. 눈싸움을 피하지 않는 상남자 츠동이처럼 다른 녀석들도 성격에 따라 반응이 제각각이다.


마끼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다정다감한 마끼가 그윽한 눈인사로 화답한다. 자기를 계속 쳐다보는 게 싫지 않은지 이내 잔잔한 골골이를 시작한다.


좋아하는 간식 냄새를 맡고 흥분 상태가 되었을 때를 제외하면, 성격 좋은 마끼는 눈이 게슴츠레할 때가 많다.


구로를 빤히 쳐다본다. 어? 요놈 봐라. 우리 집의 2인자답게 패기가 있는지 내 눈을 무섭게 노려보며 피하지 않는다. 아니구나. 역시 구로는 겁쟁이였다. 이내 눈을 깔고는 뚱뚱한 몸을 일으켜 자리를 뜬다.


루비를 부릅뜨고 쳐다본다. 실수다. 금방 눈이 동그라진 루비가 요상한 소리를 내며 달려와 몸을 비빈다. 조용히 쉬면서 심신의 안정을 꾀하려 했건만. 오늘도 내 손의 소유권은 루비에게 넘어간다.


고양이의 눈은 너무 밝은 곳에서는 동공이 작아져 날카롭게 느껴진다. 반대로 너무 어두운 곳에서는 빛이 반사되어 무섭게 반짝거린다. 개인적으로 고양이의 눈이 가장 사랑스러울 때는 살짝 어두울 때라고 생각한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에 세상이 담긴 느낌이다. 거울 같은 눈 속에 담긴 작고 아름다운 세상을 본다. 지금 이 녀석들은 내 눈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나와 같은 마음일까?


“집사야. 너의 눈 속에 헛된 야망과 물질에 대한 집착이 보이는구나. 모든 걸 내려놓고 간식이나 하나 뜯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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