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남자

꿈꾸는 남자, 시작

by 캣브로

나는 꿈꾸는 사람이다. 원대한 이상이나 포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꿈을 꾸는 사람이다. 그것도 매일 아주 생생하게. 너무 자주 꿈을 꾸는 탓에 오래 자도 개운치가 않고, 간혹 슬픈 꿈을 꾸게 되면 깨고 나서도 감정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오전 내내 힘들어하는 그런 사람이다. 궁금하다. 나는 왜 이렇게 꿈을 많이 꾸는 걸까? 다른 사람도 나처럼 꿈을 많이 꿀까?


암벽 등반을 함께 하는 형들과 운동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형들은 꿈을 자주 꾸지도 않지만 꾸더라도 꿈의 영상이 흑백이라고 했다. 나의 꿈은 총천연색 4K 화질에 음향은 풀 서라운드이다. 꿈 속에서 나는 심지어 맛과 냄새, 촉감도 느낀다. 검색해 보니 꿈을 일 년에 한두 번밖에 꾸지 않는다는 사람도 다수였다. 아내도 꿈을 잘 꾸지 않는다고 했다. 아... 진짜로? 거짓말 아니고?


혹시 공상을 많이 하는 성격 탓일까? MBTI 검사나 심심풀이 심리 테스트를 할 때 항상 고민이었다. 질문지에 항상 이런 항목이 나온다. ‘당신은 평소에 공상을 많이 하는 편입니까?’ 도대체 어느 정도가 공상을 심하게 하는 편인 걸까. ‘만약 과거로 돌아가면 오를 만한 어떤 주식들을 기억해 두고 가야 하지? 아내를 더 빨리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갑자기 집에 강도가 들면 칼을 들어야 할까, 방문부터 잠그고 경찰에 전화를 해야 할까? 잠깐만, 강도의 덩치가 나보다 작다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아 지금은 허리 디스크 때문에 힘들 수도 있겠구나.’ 다들 하루에 열 번은 이 정도 상상은 하지 않나?


man-3591573_1920.jpg


아니었다. 아내는 내가 공상을 많이 한다고 했다. 가끔 대화 중에 멍해 보일 때가 많다고 한다. 십중팔구 항상 엉뚱한 상상을 하는 중이다.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어보면 그제야 겸연쩍은 표정을 짓고 현실로 돌아온다. 아내는 이런 내가 신기하다고 했다. 나는 공상을 많이 하는 사람이 맞았다. 그것도 아주 중증으로. 이제 성격 검사 항목에 저런 질문이 나오면 나는 항상 만점짜리 선택지를 고른다.


이런 성격과 꿈을 많이 꾸는 증상이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지는 않다. 하루에 9시간은 직장에서 업무와 씨름해야 하는 나에게, 꿈이란 공상을 좋아하는 또 다른 내가 표출하는 불만 같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롯이 상상의 세계에 빠지지 못한 채 언제나 한 발은 현실 속에 담그고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상상이라는 형태로 표출되지 못한 감정, 생각, 나의 트라우마 등이 무의식의 세계에서 다양한 이야기로 등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내 꿈 이야기나 올려 보자. 읽는 이에게 도움이 될 정보나 교훈도 없겠지만 말이다. 지금 쓰고 있는 고양이 이야기보다 재미나 있을는지 걱정도 된다. 다만 쓰는 사람으로서는 한 가지 매력이 있는 작업이다. 여기에는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지난하게 쓰고 이를 다시 이치에 맞게 배열하고 과한 부분은 쳐내야 하는, 한 마디로 글을 쓰느라 머리를 쥐어 짜내야 하는 과정이 없다. 나는 그저 밤에 잠에 들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 밤새 ‘겪은’ 꿈을 글로 옮기기만 하면 된다. 말하자면 ‘불로소득’인 셈이다.


꿈의 세계는 기이하다. 그것은(그곳은) 신비로운 동시에, 어딘가 괴기하고 공포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꿈이란 항상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것일까. 나의 꿈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다가도 갑자기 이야기 밖으로 튕겨 나오며 전지적인 시점으로 변화된다. 괴물에 쫓기다가 내가 괴물이 되기도 하고,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었다가 세상 두려울 것 없는 초능력을 가진 영웅이 되기도 한다.


내 꿈은 골 때린다. 아주 ‘골 때린다.’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개연성도 떨어지는 주제에 이상한 디테일들은 살아 있다. 그래서 아까웠다. 잘 모아 두면 혹시라도 나중에 초단편 소설이라도 하나 나오지 않을까. 그리고 궁금했다. 다른 이들도 나처럼 요상한 꿈을 꾸는지. 나와 같은 ‘다몽증 환자’들과 소통하고 싶은 욕망도 있다.


앞으로 쓰게 될 나의 꿈 이야기에 재미를 위한 과장을 조금이라도 넣을 생각은 없다. 단 실제 꿈의 내용과 내가 기억하는 영상, 감정들이 다를 수는 있겠다. 혹은 꿈의 내용이 사회 통념에 위배(?)된다거나 심하게 선정적이라 일부를 축소하거나 들어낼지는 모르겠다. 이상하고 재미있는 꿈 위주로만 올릴 예정이다. 내가 만약 그 꿈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fantasy-2847724_1920.jpg 기억할 수 있으려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