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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Mar 28. 2022

부러우면 지는 거다?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헛개잡상인, #9

십 년도 더 된 얘기다. 집에서 뒹굴거리며 재미난 일 없나 눈알을 굴리는 와중 주유소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손님도 없어서 심심한데 가게나 놀러와라. 사장님이 술판 벌였다.’ 역시 난 운이 좋아. 술이나 한 잔 얻어먹을 요량으로 부리나케 친구가 일하는 가게로 향했다. 박스로 대충 만든 간이 테이블 아래 맥주병들이 정신없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처음 보는 사장님은 시뻘게진 얼굴로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왜, 그런 것 있지 않나. 보통 아저씨가 되면 생기는 자기만의 인생철학, 슬로건 뭐 이런 것들 말이다. 그날 사장님은 자신의 철학을 들려줄 상대가 절실했나 보다. 역시 술이 오르자 사장님의 인생 강의가 시작되었다. 아, 단언컨대 사장님은 절대 나쁜 분은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꼰대도 아니었다.


남자는 말이야. 척을 해야 돼. 그래야 성공하는 법이야. 그 척이란 게 뭐냐. 딱 세 가지야. 없어도 있는 척, 몰라도 아는 척, 약해도 강한 척. 남이 부러워도 절대 티 내지 마. 남자는 그 순간 잡아먹히는 거야. 알겠나!”

, 사장님.”


맞는 말 같으면서도 마음속에서 무언가 꿈틀댔다. 쉽사리 수긍이 되지 않아 입만 오물거리다 결국 내 생각을 뱉지는 않았다. 공짜 술이라면 영혼도 팔 수 있던 나이였으니까. 사장님의 이어지는 강의를 듣는 도중 낮에 읽었던 어떤 칼럼을 떠올렸다.


서양 사람들에 비해 한국인들은 부럽다는 표현을 너무 자주 쓴다. 건강하지 못한 문화다.”


사장님이 했던 말과 맥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이 위세를 떨치는 지금이야 새로운 기준이 제시되고 있지만 그땐 그랬다. ‘외국에서는 이렇다더라~’라는 마법의 한 마디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모두가 수긍했다. 그들과 다르다는 건 우리가 무언가 잘못 하고 있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동의하기 어려웠다. 사장님의 말에도, 칼럼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에도. 아니, 정확히는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부럽다는 감정이 질투 또는 시기라는 감정과 일부 교집합은 있을지 몰라도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호방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남의 좋은 일이나 물건을 보고 자기도 그런 일을 이루거나 그런 물건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있다.’

     

‘부럽다’의 사전적 의미이다. 부러움이란 가질 수 없으면 부숴 버리겠다거나 빼앗고 싶다든가 하는 그런 감정 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한번 소리 내어 말해 보자. 부.럽.다. 입에는 또 얼마나 착착 감기는지 모른다. 말하자면, 부럽다는 감정은 나를 더 발전시키는 자극제이자 내가 갖지 못한 다른 이의 장점을 보게 하는 안경 같은 것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물론 생산적인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만성적인 부러움이야 문제가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난 앞으로도 부러운 건 부럽다고 말할 것이다. 다시 사장님을 만나게 된다면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없으면 없다고, 모르면 알려달라고, 약하면 도와달라고 하는 거, 이게 진짜 쿨하고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제는 찾을 수도 없는 칼럼의 글쓴이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부러워서 부럽다고 말하는 것이 왜 건강하지 못한 문화가 되는지요? 부러운 사람을 롤 모델로 삼 좋은 부분은 배워 나가고 모자란 부분을 채우는 것이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삶의 자세가 될 수는 없는?”


정말 좋아하는 가수 장기하가 이번에 ‘부럽지가 않어’라는 노래를 냈다. 부럽다. 애초에 부러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그가 정말 부럽다. 부럽다. 머리에 박히고 가슴을 울리는 글을 쓰는 나의 관심 작가님들이 정말 부럽다. 부러운 모든 이들을 별빛 삼아 나는 계속 걸어갈 것이다. 그러니 부디 나의 별빛으로 계속 남아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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