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
나는 외동딸로 혼자 자랐다. 하지만 방학 때마다 서울 우리 집으로 놀러 오던 친형제 같은 사촌들이 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방학이면 사촌 언니, 나, 사촌 동생 세 남매가 지지고 볶고 놀며 지냈다.
이따금씩 어린 시절 여름 방학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우리 집은 한강에서 아주 가까웠다. 그래서 지금만큼 놀거리가 다양하지 못했던 90년대 중반의 나의 어린 시절은 심심하면 가는 곳이 한강공원이었다. 운전을 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데려갈 수 있는 최고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자전거 하나 끌고 가서 돌아가면서 타기도 하고, 아파트 놀이터보다 훨씬 큰 놀이터도 있고, 간식거리 몇 개 싸서 벤치에 앉아 먹으면서 놀면 소풍이 따로 없다. 어디 멀리 나갈 필요가 없었다. 우리끼리 알아서 뛰어노니 할머니는 그저 세 남매의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시고 집에 돌아오면 그만큼 밥도 잘 먹고 잠도 푹 자주니 한강만큼 가성비 좋은 나들이 코스가 없었을 것이다.
여름 방학이면 거의 일주일에 한 번은 아침부터 수영장 오픈런을 가곤 했다. 세 남매는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쉬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에는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물속에서 놀았다. 그리고 할머니가 싸 오신 김밥과 매점에서 사 온 떡볶이와 함께 슬러시를 먹을 때면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었다. 9시부터 오후 3~4시 정도까지 그렇게 놀고 집에 오면 온몸이 벌겋게 익어있다.
그러면 항상 할머니께서는 삼 남매를 눕혀 놓고 오이를 얇게 썰어서 온몸에 붙여 주셨다. 그렇게 누워서 스르르 낮잠 한숨 자고 나면 벌겋게 익었던 피부도 조금 가라앉았다. 우리가 자는 동안 맛있는 저녁 한 상이 차려져 있고, 할머니는 앉아 있을 새도 없이 그렇게 알뜰살뜰 우리를 보살펴 주셨다.
할머니는 우리 삼 남매 모두를 예뻐하셨지만 옛날 분이라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차별이 있긴 했다. 아무래도 아들인 막내 동생을 조금 더 각별하게 대하셨는데, 우리 두 누나들은 섭섭해서 속상함을 토로할 때도 있었지만 이점을 이용한 적도 많았다.
치킨이나 피자 같은 배달 음식이 먹고 싶으면 동생을 시켰다. 동생은 사실 고봉밥에 김치만 주면 잘 먹는 한식 파였는데 누나들 등살에 어른들에게 아양을 떨어야만 했다. 또, 놀이동산에 가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다. 몇 날 며칠 전부터 ‘롯데월드가 가고 싶어요!’라고 계속 말하게 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덧 우린 롯데월드에서 신밧드의 모험을 타고 있다.
사실 동생이 정말 착했기 때문에 모두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 돌이켜 보면 누나들이 시켰다는 사실도 뻔히 아셨을 것이다. 결국은 우리 모두를 다 사랑하셨던 것일 텐데… 동생만 차별한다고 가슴에 비수도 맞이 꽂았던 것 같아 죄송스럽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곳이 하나가 바로 덕수궁이다. 할머니와 함께 덕수궁을 여러 번 갔던 기억이 있다. 사촌들이 오면 아주 무더운 시기를 피해서 덕수궁에 소풍을 갔다. 어린 나이어서 그런지 거기를 계속 걸었던 게 힘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리고 큰 문 앞에 조선시대 복장을 한 아저씨가 서 있었던 기억도 있다. (뭔가 뒤죽박죽 섞였을지도 모른다.) 지금 글을 쓰면서 깨달았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덕수궁에 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항상 경복궁만 갔지 덕수궁은 가보지 않았다. 생각난 김에 사촌들과 함께 옛 기억을 더듬어보며 가보고 싶어졌다.
할머니와의 어린 시절 추억은 어느 날 문득, 또 어느 날 문득 떠오른다. 그러다 다시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글로 남겨두니 좋은 것 같다.
정말 언제 한번 사촌들과 덕수궁이나 다녀와야겠다. 그러면 또 할머니와의 추억이 한 보따리 나올 것 같다.
벌써부터 두근두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