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긍정 Oct 09. 2023

할머니의 양념게장

할머니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요리를 참 잘하셨다.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셨다. 할머니의 시그니처 요리가 몇 가지 있었는데, 집에 손님이 방문할 때마다 해 주셨던 양장피를 비롯하여 탕수육과 마파두부 등 일단 중국 요리가 특기셨다. 사실 할머니께서는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동네에서 중국집을 크게 하셨고 맛집으로 소문날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고 들었다. 밑반찬으로는 바삭바삭하게 튀기 듯해주신 오징어채와 멸치볶음이 있다. 이 반찬은 일본에 있을 때 할머니가 가끔 보내 주셨는데, 친구들에게 아주 인기였다. 지금 남편도 딱 한번 먹어 봤는데 아직까지 그 맛을 있지 못한다.


그리고 양념게장.


가을 꽃게철만 되면 생각나는 우리 할머니의 양념게장. 꼭 한 번만 다시 먹어 보고 싶다.







 우리 집 식구들은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할아버지께서 매운 음식을 잘 못 드셨는데 할머니가 할아버지 입맛에 맞춰서 음식을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할머니 음식을 먹고 자란 나도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가족들이 전부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니, 당연히 양념게장도 그리 맵지는 않았다. 

 살짝 달짝지근하면서도 끝맛이 매코옴하게 끝나는 할머니의 게장은 아무리 맛있다는 게장 맛집에서 사 먹어 봐도 그 비슷한 맛도 찾을 수가 없다. 너무 맵지도 너무 달지도 않은 맛과 꾸덕꾸덕하지 않고 국물이 조금 있는 양념이 키포인트로 밥을 슥슥 비벼 먹기도 딱 좋다. 하지만 우리 엄마도 배워 놓지 못해서 이제 할머니의 양념게장은 죽을 때까지 먹을 수가 없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우리 남편의 최애 음식 중 하나가 양념게장이다. 할머니가 남편을 위해서 꼭 만들어 주신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결혼하고 가을이 오기 전에 하늘의 별이 되어 버리셨다. 매년 가을마다 우리는 '할머니 양념게장 먹고 싶다. 남편은 할머니 양념게장 먹어 보고 싶다.' 이 대화를 나누곤 한다. 우리 남편에게 이 맛을 알려줄 수는 없지만 올 가을도 맛있는 게장집을 찾아 맛집 탐방을 떠나 보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 댁에서 고봉밥을 무한으로 리필해 주던 기억, 손으로 김치를 쭉쭉 찢어주시던 기억, 맛있는 요리가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져 있던 기억 등 할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느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할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은 늘 애정이 그득그득하다. 


 20대 초반에 유학을 갔고 그래도 취업을 해 직장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와서는 바로 결혼을 했고, 얼마 안 지나 아이를 낳았다. 할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먹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외식을 하거나 사골이나 반찬을 집에 가져와 먹은 기억만 남아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살림 스킬이 조금은 늘었고, 나름대로 할 줄 아는 요리가 많아졌고 그중 자신 있는 메뉴들도 생겼다. 조금만 더 살아 계셨다면 나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해 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효도는 정말 있을 때 잘해야 하는 것. 후회만 남는다. 


 가을만 되면 양념게장과 함께 찾아오는 할머니의 대한 추억이다. 가을이 찾아오니 역시 요즘 들어 더욱 생각난다. 다음 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계신 호국원을 찾아가 볼 예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술 선생님, 일본어 선생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