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 스킬
전에도 한번 할머니와의 추억을 글로 쓴 적이 있다.
어린 시절 나에게는 엄마와도 같았던 우리 할머니, 다정하고 따뜻했던 할머니와의 많은 추억들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번에는 아들의 여름방학 숙제로 그림일기를 쓰다가 문득 떠오른 할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정확히 몇 살 때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아직도 할머니가 자주 그렸던 풍경화가 생각이 난다.
약간 이런 느낌의 풍경화를 항상 그리셨는데, 그릴 때마다 파스텔, 크레파스, 물감등 도구를 조금 다르게 쓰셨다. (나도 더 잘 그릴 수 있는데 휴대폰으로 그려서 그런 거다. 진짜다!) 그래서 늘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있으면 위와 같은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너무 눌러서 색칠하면 안 이뻐.”
“나무는 이렇게 그려야지”
거실에 상을 펴고 앉아 같이 그림을 그리면서 할머니는 이런저런 꿀팁을 주셨다. 그때 그 꼬꼬마 시절에도 느꼈던 건데, 말씀은 안 하셨지만 할머니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이렇게 그림 그리는 시간이 꽤 자주 있었고 내 그림을 봐주시는 것보다 본인 작품에 공을 들여 그리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덕분에 나에게는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할 수 있는 행복한 추억이 또 하나 있어 감사하다.
할머니는 여자는 학교를 보내지 않았던 그 옛날 시절에 소학교를 나오셨다. 외증조할아버지께서 여자도 배워야 한다며 학교를 보내주셨다고 한다. 특히 우리 할머니를 예뻐하셨다고도 들었다. 가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글을 쓰면서 문득 생각이 났는데, 그 모습이 왠지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지금의 나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여담으로, 강원도 산골에 사셨던 할머니는 집이 나름 유복했다고 한다. 한 날은 친구가 대게를 먹는다며 온 동네 자랑을 하고 다녔는데, 그 대게 다리 한 짝을 얻어먹으려고 그때 당시에는 귀했던 연필 한 자루와 대게 다리 한 개를 바꿔 먹었다는 이 이야기는, 게를 먹을 때마다 기본 반찬처럼 따라 나오는 옵션 같은 이야기다.
일본어를 배운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이다. 할머니는 어린 일본어를 꽤 잘하셨다. 일본어를 쓸 줄도 아셨다. 어린 나에게 영어는 못 가르쳐줘도 일본어는 가르쳐 줄 수 있다며, 한글 공부할 때 쓰는 네모 칸이 있는 공책에 히라가나를 써 주시며 외우게 하셨다. 연필로 히라가나를 꾹꾹 눌러쓰며 외웠던 기억이 난다. 내가 아이우에오 나니누네노를 열심히 쓰며 외우고 있으면, 할머니는 저녁 준비를 하셨다. (엄마가 되고 알았다. 상차릴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는 소리와 경쾌한 도마 소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생선 굽는 냄새가 난다. 그리고 나의 훌륭한 선생님이자 하나뿐인 내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 장면들은 이제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면서 아련해져 가지만, 이 기억을 꺼내어 볼 때마다 그리움은 더 짙어져만 간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이렇게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 장면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감사하다.